[바울의 새 관점 (2014년 11월 합신에서 열린 조병수교수님 강의 요약)]
* 송영목 교수님(고신대학교 신학과 신약학)께서 보내주신 요약내용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강의 동영상 파일은 제 담벼락에 포스팅되어 있습니다. ^^

1. NPP의 출현 배경

에큐메니칼적 분위기- 기독교와 유대교의 화해를 위해서 유대교를 비판한 바울을 재해석해야 함. 그리고 기독교와 가톨릭의 화해를 위해서 바울에 근거하여 가톨릭을 비판한 루터의 교회 개혁을 재해석해야 함.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반성- 1940년대 중반 이후로 독일에서 '교회와 이스라엘'에 대한 많은 책이 출판됨. 친유대교적 분위기가 조성됨(참고. 유대인이 선민으로 거국적으로 회심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미국과 한국의 세대주의).

2. NPP이전의 NPP 사상을 가진 학자들

G.F. Moore(1851-1931)- 1920년대 하버드대에서 가르친 무어는 1세기 유대교는 율법(legalism) 종교가 아니라 은혜 종교였다고 주장함. 그 당시 신약 연구는 종교사학파적 분위기 속에서 유대교가 아니라 헬레니즘 관점에서 연구가 진행되었기에, 그의 주장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함.
W.D. Davies(1911-2001)- 샌더스의 스승이자 장인으로서 원래 복음서 전공자였던 샌더스와 복음서에 대한 책을 공저함. 데이비스도 1세기 유대교는 은혜 종교라고 간주함.
Krister Stendahl- 스웨덴 출신으로 1954-84년까지 하버드대에서 가르친 스탠달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바울”이라는 논문에서 다메섹 사건은 바울의 회심이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 소명을 받은 사건이라고 주장함. 따라서 바울과 유대교는 연속성이 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은 인식했으나 죄의식은 없었다. 따라서 바울은 용서와 구원으로서의 칭의를 강조하지 않았다. 바울에게 칭의는 이방인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고안이지, 하나님의 계시는 아니다. 죄 문제로 고민을 하지 않았던 바울은 행복한 유대인이었으며, 롬 1-8장의 서론을 지나, 9-11장의 중심 부분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에 초점을 둔다. 이 두 그룹의 교회론적 일치를 위해서 고안한 것이 칭의다.
1800년대 말-1900년대 초의 '종교사학파'는 성경의 계시적 측면을 제거하고 고대의 종교 문서로 성경을 해석했는데, 신약을 유대교가 아니라 헬레니즘 배경에서 규명함. 헬레니즘에서 의는 법정적 개념이고 유대교에서 의는 NPP가 주장하듯이 관계의 회복이다.
알버트 슈바이처- 그는 신약을 유대 묵시종말론적 관점에서 해석했는데, 묵시 종말론이 예수님과 바울을 지배했다고 봄. 이런 유대적 해석(특히 관계회복으로서 칭의 개념)이 NPP에 영향을 줌. 슈바이처는 이방인을 교회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 큰 분화구라면, 이신칭의는 바울이 고안한 작은 분화구라고 봄(참고. W. Wrede도 바울의 칭의는 이방 선교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함). 슈바이처는 ‘그리스도 안에’를 유대교적 의미로 이해했는데, NPP는 ‘신비적 참여’(연합)로 표현함.
불트만- 실존주의자답게 그는 개인 구원을 강조함. 따라서 루터교 전통에 머뭄. 그러나 그의 제자 케제만은 칭의를 집단적 차원으로 인정함(참고. NPP의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론적/교회론적 칭의 이해).

3. 영국의 NPP 삼두 마차

E.P. Sanders- 1963년에 HTR에 죄와 회심에 민감한 어거스틴 수도회 전통의 루터가 바울을 오해했다고 비판함. 1964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바울’에서 칭의의 사회적 의미를 주장함. 1977년의 '바울과 팔레스틴 유대교'에서 탄나임 문서에 나타난 유대교의 공통적 패턴의 핵심은 “유대인이 하나님의 은혜/언약 때문에 구원 안으로 들어가고, 은혜/언약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로 봄. 참고로 AD 70년 8월 29일에 성전이 파괴된 후, 야브네로 이주한 유대인들이 요하난 벤 자카이의 지도로 미쉬나를 편찬하기 시작함. AD 200년경 6권으로 미쉬나가 완성됨. 반복하다는 의미의 아람어 ‘샤나’에서 온 ‘미쉬나’는 율법을 반복하여 랍비의 전승을 밝힌 책이다. 미쉬나를 편집한 사람을 탄나임이라 부름. 나중에 미쉬나에 빠진 내용을 토세프타에서 보충함. 토세프타는 더한 것이라는 의미의 ‘야사프’에서 온 말. 말하다는 의미의 ‘아마르’에서 온 표현인 아모림이 편집한 탈무드는 미쉬나를 해석한 문서임. Sanders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라는 말을 고안함.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사람의 위치는 언약 관계로 확립 및 규명된다. 언약은 그 안에 머물도록 사람에게 순종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불순종하면 언약/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음을 암시함(참고. 시초 칭의와 최종 칭의를 구분하는 Wright는 행위가 부족한 한국 기독교를 반성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줌).
James Dunn(b. 1937)- ‘New Perspective on Paul’이라는 말을 고안하고, 바울 서신의 ‘율법의 행위’를 유대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할례와 정결법 등으로 간주하여, 이방인 성도와 하나가 되는데 장애요소가 되었기에 바울이 비판했다고 주장한다(참고. 1988년 Dunn이 쓴 WBC ‘로마서 주석’ 서문과 ‘바울 신학’). 샌더스에 동의하면서 Dunn은 바울이 행위를 칭의보다 덜 강조하기에 언약적 율법주의를 무시한다고 봄(참고. 어거스틴 수도회 소속이었던 루터는 죄와 회심, 칭의에 민감했음).
N.T. Wright(b. 1948)- 라이트는 의의 전가를 반대하고, ‘포로에서 귀환’이라는 틀로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해석함. 더럼의 주교를 역임했고 세인트 앤드류스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복음주의권에 영향을 미침. 1978년 30세에 공식적인 첫 번째 학회 발표에서 자신이 NPP라는 말을 고안했다고 주장함(참고. 2015년에 한역된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4. NPP에 대한 비평자들

조병수교수는 NPP를 영국 신학과 독일 (루터교) 신학의 충돌로 보면서, NPP의 핵심 주장을 비판함. 리폼드신학교 신약 교수로서 샌더스 제자인 Guy Waters(별명: Dry Waters)는 NPP를 비판하는 OPP입장에 섬. Waters처럼 NPP의 기여를 부분적으로 인정하지만 OPP를 지지하는 한국 학자들이 많다(최갑종, 김세윤, 이승구 등)

출처: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010058312369545&id=100000961561061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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