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happyvil/happyvil_news01/98949.html

사랑할 때 오는 감정 피하지 말고 느껴야



■형경과 미라에게■
부모와 대면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순 없나요

[질문]: 마음의 옹이 없이 자라온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저 역시 폭력적인 아버지, 자식을 우울증과 분풀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습니다.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늘 가까이 한 것은 종류를 가리지 않는 독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 문제점을 해결해주지는 않았습니다. 형경과 미라님은 원인을 대면해서 해결하기를 바라시는데 저는 아버지와 대면할 용기도, 의지도 없습니다. 부모와 대면하지 않고도 그분들을 이해하거나 제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습니까? 다른 방법을 알려주세요. (회피녀)

제가 집착이나 의심이 심해서 남자 친구를 힘들게 해요. 남자 친구가 저말고 다른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싫고 불안해서 짜증을 내고 싸우게 돼요. 아주 사소한 것만 속여도 상처가 되고 너무 힘이 들어요. (여자)

남자 친구가 일 때문에 외국에 간 지 1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남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면 자꾸 신경질을 내게 됩니다. 제가 힘든 상황일 때 옆에 있어주지 않는 것이 화가 납니다. 너무 화를 많이 내서 예전의 다정했던 관계로 돌아가기도 어색할 거 같아요. 제가 화를 좀 안 냈으면 좋겠습니다. (신경질)

그가 다른 여성을 만난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용서해 달라며 정리하는 중이었다고 저를 잡았습니다.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 번 믿어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분이 안 풀린 제가 술을 많이 마시고 그에게 심하게 화를 내고 상처 될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다음날 그는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김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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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불안·질투등 부정적 감정
상대에게 쏟지 말고 직면해야… 친구들과 터놓고 얘기할 필요도

[답변]: 정신분석은 ‘사랑 앞에서 좌절한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만 제대로 해낼 수 있으면 생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고도 합니다. 그동안에도 제가 만병통치약인 양 사랑을 권해드리곤 했는데 이번에 회피녀님의 질문에 대해서도 역시 사랑을 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할 때면 내면에 있는 모든 감정이 부글거리면서 올라옵니다. 내면에 그런 것이 있는지 짐작조차 못했던 분노, 불안, 의심, 질투, 집착,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끌어 오르면서 당사자를 고통스럽게 하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감정의 근원을 자각하지 못한 채 자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상대방 탓으로 돌립니다. 집착이나 의심을 하면서 상대방을 몰아붙이고(여자 님의 경우), 힘들 때 돌봐주지 않는다고 상대에게 화를 내고(신경질님의 경우), 사랑의 뒤편 감정인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연인을 잃게 됩니다(김 에스더님의 경우). 위 분들의 경우 말고도 상담 코너에 올라오는 글 중에는 여성이 표출하는 불안이나 집착 때문에 남자 친구가 ‘피곤하다’면서 헤어지자고 한다는 사례가 자주 보입니다.

사랑할 때 맞는 ‘과도한 감정’은 상대방이 준 것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 관계가 기폭제가 되어 내면에 퇴적층처럼 형성되어 있던 감정들이 끌어올려진 것일 뿐입니다. 그것은 출생 직후부터 부모와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되어진 감정들이어서 그 ‘과도한 감정’들과 직면하는 것은 곧 무의식과 대면하는 일이 되며, 그럴 때 연인은 무의식 속에 형성된 부모 이미지를 떠맡는 역할을 합니다.

사랑할 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모든 감정들을 그냥 느껴보세요. 내 분노가 이토록 질기구나, 내 불안감이 이토록 깊구나 의식하면서 오래 그것을 체험하세요. 온몸이 무너지게 고통스럽고 가슴이 바스러질 듯 힘들더라도 그 감정을 상대에게 쏟아붓거나, 외면하고 회피하거나, 더 나은 다른 상대를 찾아 떠나지 말고 지긋이 체험하세요. 상대방에게 본인의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내면의 감정들을 의식의 차원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단단한 덩어리가 물에 풀려나가듯 무의식에 응축된 ‘옹이’들이 천천히 풀려나가게 됩니다. 그 고통스러운 고비를 한 단계 넘기고 나면 어느새 달라져 있는 자신을 느끼실 겁니다. 물론 의식적인 자각 없이 그 모든 분노, 질투, 집착을 상대에서 쏟아내도 세라피의 효과는 있습니다. 다만 그럴 경우 관계를 망치기 십상이고, 효과가 미미해 똑같은 패턴의 실수를 반복한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덧붙여 회피녀님, 정서적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믿을 만한 친구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보시라고도 권하고 싶습니다. 함께 정신분석이나 심리학에 관한 책을 읽고 정기적으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보세요. ‘언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무의식이 표출되는 한 방식이 되며, 타인의 경험에 비추어 본인의 문제를 많은 부분 객관화시킬 수 있습니다.

김형경/소설가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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