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수업에서 창세기 11:1-9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뭐라 해야 할까.. 찌릿함이 있었다...
세상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말이다...

아래의 내용은 교수님이 설명하신 내용의 일부이다.

11장 3절을 보면 נִלְבְּנָה(닐버나:NLB)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이 단어의 뜻은 "make a brick" 즉 벽돌을 굽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그런데 7절을 보면  נָבְלָה(나벌라:NBL)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이 단어는 "mingle, mix"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문맥상 혼란스럽게 하다 라고 해석이 되어 있다. 이 두 개의 단어를 살펴보면 단어의 어순만 살짝 바꾸어 놓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가는 언어이므로 왼쪽에서부터 세 개의 단어를 보면 두 번째와 세 번째의 consonant가 NLB에서 NBL로 서로 바뀌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11장 9절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한 번 더 나오는데 בָּבֶל(바벨:BBL) 과 בָּלָל(바랄:BLL) 이 그것이다. בָּבֶל(바벨:BBL)은 한 도시 또는 지역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이 곳에탑을 쌓아 서로 흩어짐을 면하고자 했었던 곳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노력을 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다시 혼돈을 시키시는데 혼돈시킨다는 의미로 사용된 동사가 בָּלַל(바랄:BLL)이다. 역시 두 단어를 살펴보면 첫 글자와 세 번째 글자는 같고 가운데 글자만 B에서 L로 살짝 바뀌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표현들은 모두 언어유희들로 하나님께서 바벨에 모여서 탑을 쌓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 결국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이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쌓는 탑에 직접 손을 대시지 않으시고, 단지 단어의 순서만 살짝 바꿔놓으신다. 그 순서를 바꿔 놓으심에 따라서 사람들 사이에는 서로간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혼란이 결국 인간들의 자중지멸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었다는 이야기이다.

단순한 발견이지만 이 사실은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큰 것 같다.. 인간의 한계를 상당히 명확히 보여주며.. 특별히 1-2차 세계대전 이전에 사람들이 인간의 이성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환상의 실체를 성경적 입장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어가다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을 하게 된다... 일단 아래 구조를 보자.

10:1 노아의 자손 Prologue (셈, 함, 야벳)
10:2-5 야벳의 자손 소개
10:6-20 함의 자손 소개
10:21-31 셈의 자손 소개
10:32 노아의 자손 Epilogue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11:1-9 바벨탑 사건
11:10-26 셈의 자손 소개 (두 번째 등장)
11:27-32 데라의 자손 소개

먼저 10장 32절을 보면 노아의 자손들이 홍수 후에 나뉘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편 11장에서는 백성들이 바벨 지역을 중심으로 하나로 모이는 장면이 나오고, 9절에서 비로소 사람들이 흩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창세기 10장 32절과 11장 9절의 사건은 어떠한 순서를 가지고 있을까? 10장 32절의 백성이 나뉨이 먼저 있었고, 그렇게 나뉜 백성들이 다시 모여서 11장 9절에서 다시 흩어지게 된 것일까??

게다가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더 발견이 된다. 창세기 10:21-31절을 보면 이미 셈의 자손이 한 번 소개가 된다. 그런데 11:10-26절에 똑같은 셈의 족보가 한 번 더 나온다. 왜 셈의 족보가 두 번 출현하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 박 교수님은 Literary Context로 그 답을 하신다.

먼저 창세기 11:1-9절 사건이 창세기 10장 32절 사건보다 먼저 있었던 사건으로 이해를 하신다. 창세기 10장의 자손들의 이름은 모세가 출애굽 할 당시 지역의 이름으로 모세가 당시 모세오경의 청중들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현재 있는 민족들의 기원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야기 한 것으로 이해를 한다. 따라서 창세기 10장의 내용들이 모세의 청중들이었던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너무 오래 된 고대의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11장 뒷 부분에 이야기 되는 셈의 자손의 이야기가 바벨탑 사건 이후에 다시 등장한다. 이로써 10장의 내용과 11장의 내용을 역사적 순서에 따라서 있었던 사건으로 보기에는 이미 불가능 하다. 이 두 장의 이야기는 따로 이해를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바벨탑 사건이 10장의 민족들이 나뉘기 이전 사건으로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는 것으로 이해 한다.

 

바벨탑 사건이 먼저 있은 후에 사람들이 각자 쓰는 언어에 따라서 노아의 세 아들들의 족속들로 나뉘었고, 각 족속 별로 흩어져서 출애굽 당시 사방에 살고 있는 족속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것이 박교수님의 결론인 듯 하다. 보기에 충분히 타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렇게 보았을 때 셈의 후손 중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라인으로 선택을 받은 아브라함의 라인은 창세기 11:1-9에서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셈의 후예들도 이 안 어딘가에 같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아브라함도 결코 다른 죄인들과 다르지 않았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이 내용은 우리들의 정체성과도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때때로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불신자들과 비교해서 우리 자신이 특별히 더 의로운 것처럼 느끼며 살 때가 많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역시 암시하고 있다. 우리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똑같이 죄를 지으며 똑같이 타락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흠.. 일단 이 구절이 던져주는 메세지는 여기까지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헷깔린다.. 그럼 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까??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타락한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다면.. 그 가운데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면 과연 내 삶의 목적을 무엇으로 삼아야 하는가 말이다..

아브라함 스토리를 조금 더 생각 보아야 할 듯 하다.

Posted by yy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