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세례와 관련된 구절들을 보니.. 성령 세례와 같이 나오는 단어들이 몇 있군요.. 재미있네요.. 성령 세례와 같이 사용된 단어들이 성령 세례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침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푸실 것이요
마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태복음입니다. 요한의 경우 물로 세례를 주는데 예수님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줍니다.. 성령세례과 불이라는 이미지와 합쳐져서 복합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경우인데요.. 불이 하는일들이 보시는 바와 같이 태우는 것이로군요.. 7절과 8절에 더불어 열매라는 이미지와 관계해서.. 불이라는 이미지는 열매를 제대로 맺지 않는 사람들 즉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뭐 위의 요한복음의 경우에는 성령 세례하고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지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요.. 일단 세례라는 말 자체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요한복음 1장의 물과 성령의 세례와 연결시켜서 이 부분이 세례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고들 많이 받아들이고 계시죵..??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물이라는 단어가 같이 쓰이는군요.. 요한복음에서의 물이라는 단어는 사마리아의 여인 이야기, 가나 혼인잔치.. 기타 여러 생수의 비유등에서 정결과 생명을 상징하는 단어로 많이 쓰입니다.. 특히 요한복음 7장을 보면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위와 같이 성령과 생수를 동일시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결국 성령 세례가 요한복음에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수과 관계가 있는 것이네요..

또 요한복음 1장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면 다른 공관복음서와는 다른점이 하나가 있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이 없는 것입니다.. 대신 예수님 자신이 다른 방법으로 세례를 받으시는데.. 하나님에게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십니다. (이건 린츠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네요.. 저도 그런 관점에서 보니 과연 그렇구나.. 생각이 되네요..)

요 1: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요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요 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한복음에서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패턴이 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대언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성령을 통해서 대언하라는 것입니다.. 이 패턴은 관계에도 적용이 되어서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거하고..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된다는 패턴이지요.. 그러한 요한복음의 패턴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성령 세례를 주시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성령 세례를 받으시는 것이 크게 이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위의 32절을 그래서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시는 부분이라고 보는 것이고요.. 물론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도 예수님이 물로 세례를 받으시는 부분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시는 부분.. 둘 다 나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요한이 예수님이 물 세례를 받으시는 부분을 빼고 성령 세례를 받으신 부분만을 둔 것은 성령 세례를 받으면서 하나님께서 하셨던 말씀인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판단이 된니다.. (린츠 교수님이 그리 말씀 하십니다.) 물론 요한복음에서의 아들이라는 의미는 단순한 사람의 아들의 의미가 아닌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인자의 이미지로..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이야기 하는 또 다른 용어입니다..

린츠 교수님은 여기에서 "아들"이라는 단어에 촛점을 두고 요한복음 1장의 성령 세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고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는 사건으로 받으들이시는데.. 이 부분은 좀 헷깔리네요.. 아무튼 요한복음에서의 성령 세례는 물이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5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행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4-8절은 또 다른 단어들이 같이 딸려나오는 것이 보입니다. 여기서는 능력이라는 단어와 증인이라는 단어가 같이 쓰이는군요.. 참 여러가지로 쓰입니다 그려.. 사도행전의 구절은 파란색 부분을 같이 보아야 의미가 있대요.. 린츠 교수님이 그러시네요 ^^; 예루살렘은 City of David, the Plate where the coming Messiah is promised..라고 하네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로 약속이 된 약속의 장소.. 유대는 그 약속된 메시야를 품고 있었던 민족이고요.. 이게 바로 요한복음 4장 22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구원은 유대사람에게서 난다는 말씀의 숨은 의미죵..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중에서 나오기로 약속이 되어져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품은 그릇같은 존재였고요.. 사마리아인들은 Half Jewish들이었고.. 땅 끝은 바로 Gentile의 영역입니다. 점점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있었던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궁극적인 대상이었던 이 땅의 모든 민족에게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퍼져나가는 그러한 양상입니다.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위의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과정에 중요한 개입이 하나가 있는데 성령이라는 존재로군요.. 성령 세례가 바로 그리스도를 땅 끝.. 즉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이 되어진 세상 모든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것과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4절과 5절을 보게되면 성령 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이 8절에서 나타나는데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기 이전에 제자들이 먼저 충족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성령세례이기 때문이라는군요..

행 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행 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행 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행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행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행 8: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행 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더라
행 8: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도행전 8장에서는 성령이 임하시는 순서가 좀 특이하네요.. 7장에 걸쳐서 8장 앞 부분은 스데반이 순교를 하고 그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탄압이 있고.. 결국 기독교인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Context에서의 상황입니다.. 그 상황에서 7명의 집사중 한 명인 빌립이 위의 파란색 글씨..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일단 사마리아라는 지명 자체를 좀 눈여겨 볼 필요가 있겠네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1장 8절의 예언(?)에서 지금 사마리아까지 온겁니다..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선포를 했는데..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믿고나니까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내려보내게 되었고.. 그런데 가서 보니까 아직 이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을 했는데 성령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눈이 가네요.. 어쨋든 그리해서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대어서 기도를 해 주었더니 그제서야 성령이 사마리아인들 위에 임하였다는 것인데요.. 흠흠...

린츠 교수님은.. The baptism of HS is not the same as conversion; it is a second experience after conversion.. 이라고 표현을 하시는군요.. 아마도 이 부분이 오순절 운동을 펼치는 라인쪽에서 성령 세례를 conversion 또는 regeneration과 연결시키지 않고 empowerment for the service in ministry와 연결시키는 중요한 근거가 될 듯 하군요.. 순서문제..

린츠 교수님은 conversion과 baptism in HS 사이의 갭을 사마리아 교회와 유대 교회의 unity로 해석을 하시는군요.. 일단 성령세례를 베푸는 주체가 사도들이었다는 점에 근거를 두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먼저 선택을 받고 예루 살렘에서 교회를 일으켜서 섬기고 있는 사도들을 통해 사마리아 교회의 교인들에게 성령을 주신것은 결국 사도들을 Key로 삼아서 교회의 연합을 이루신 것이라고 보시네요..

행 10: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행 10: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 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행 10: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 10: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행 10: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위의 말씀에서는 분명히 8장과 바뀐 부분이 있군요.. 8장의 사마리아인들에게는 물 세례를 먼저 주고 성령 세례가 임했는데 이 곳 10장에서는 먼저 성령 세례가 임하고 난 후에 비로서 물 세례를 주는군요.. 물 세례와 성령세례의 순서는 서로 뒤바뀌었지만.. 그래도 바뀌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성령 세례의 agent로 사도인 베드로가 사용이 되었다는 부분과.. 역시 성령세례와 conversion은 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난때는 고넬료가 비록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완전하게는 모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로 이미 돌이킨 후였으니까요..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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