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또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열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전에는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단어.. 인성교육.. 이 단어가 이제는 마음에 와 닿습니다..

현재 우리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 타블로 사건, 용산 참사 사건.. 연예인들의 연이은 자살 사건.. 인터넷에 만연하고 있는 악의적인 악플들.. 얼마 전에 죽은 최고은 작가의 요절 사건.. 전세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는 현상들.. 꿈과 희망을 먹고 살아야 할 대학생들이 점점 빛쟁이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들.. 정치권의 혼란스러움.. 대기업들이 중소 기업의 목줄을 잡고 있는 부분들.. 그래서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의 허리를 받쳐주어야 할 중소 기업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

굉장히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이 모든 사회 문제들이.. 결국은 하나의 축으로 인해서 생겨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태생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성장주의이지요.. 철저하게 성장 지상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결국 이 모든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서 이러한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서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제 스스로 많은 절망과 또 자살에 대한 의혹을 경험을 하면서 앞으로의 사역 방향을 무언가를 이루는 것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에 촛점을 맞춰야 되겠구나.. 결심을 하면서 사람을 보니 우리 사회가 사람을 살리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을 극한의 한계로 몰고 가서 죽이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사회의 요구에 떠밀려서 극한까지 간 사람들이 자신에게 지워진 모든 책임을 감당하지 못 할 때에.. 그 사람은 결국 죽음을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구조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좋은 정치적인 제도나 교육 정책도 지금의 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성장위주의 가치관.. 어떻게 하든 간에 목표한 것만 이루면 된다고 하는 성공 지상주의적인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무엇을 하더라도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물론 기독교인으로 그 모든 해답은 하나님께 있다고 믿지만 과연 이 사회에 대해서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접근을 해야 그나마 완충지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은.. 대대적인 가치관 변혁 운동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공 지상주의적인 가치관.. 어떤 방법이 되었든 자신이 맡은 것을 해내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결과 지상주의적인 생각을 버리고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특히 사회가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아껴줄 줄 아는 그러한 풍토와 그러한 가치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고 가지도록 끌어가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가치관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결국 인성 교육에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을 막을수는 없네요.. 인성교육이란 사회가 건강하지 않으면 나와 내 가족도 건강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를 준비하는 모든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BS 다큐프라임 서당 시리즈는 옛날 서당에서 이 인성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매우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3부 후반에 인터뷰어들이 이야기 했었던 것처럼 지금의 학교 교육이 17-8세기의 서당교육을 따라갈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서당이 추구했었던 가치.. 인성교육 부분에 대해서는 그 필요성을 이야기 하고 지금의 학교 교육 시스템에서 어떻게 녹여내야 할지를 고민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혹자들은 과거급제를 지향하지 않고 인성교육을 강조했었던 이 서당 교육이 너무 고리타분하지 않느냐고 지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교육은 2 가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첫 번째로 내가 속해있는 사회 안에서 나는 어떤 존재론적인 의미를 가지느냐 하는 부분이에요.. 나는 절대로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사회라는 틀 안에서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 안에서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사회 없이는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의미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결국 내가 잘 되고 내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이 잘 되기 위해서는 내가 속해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보기에는 고리타분해 보이는.. 유교에서 이야기 했었던 "예" 라는 것은.. 사회 안에서 다른 구성원들과 어떻게 하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부분이었어요.. 쉽게 이야기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공자가 택했었던 나름대로의 사회 질서유지 체제였던 것이지요.. 그것이 공자가 꿈꿨던 공동체의 가치였던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우리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공자가 강조했었던 "예"라는 가치 대신 "법"이라는 가치를 사용을 하고 있어요..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을 버리고 자유 민주주의 사상을 우리나라의 국가 유지 및 통치 사상으로 들여오면서 자연스럽게 유교에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강조했었던 "예" 라는 가치관을 버리고 "법치주의" 라는 가치관을 들여온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관계할 때 법치주의적 가치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냐에 근거해서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합리주의에 근거한 서양의 사고를 많이 받아들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서당이 존재하고 있었던 당시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와 서로가 관계를 맺을 때 유교적 전통이 강조하는 "예" 라고 하는 가치관에 근거해서 관계를 맺어 왔었던 것이지요..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마을 서당은 바로 이 가치관을 가르치는데 중심을 두었던 서당이었던 것이고요.. 이러한 바른 가치관은 내가 속해있는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도록 하는데 있어서 아주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반면 3편 후반에 등장하게 되는 경쟁서당의 경우에는 이러한 사회적 틀 안에서의 나 자신을 찾아가고 나와 사회와의 바른 관계를 정립해주는 과정들은 모조리 무시하고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오게 됩니다. 분명히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빨리 잘 살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의 가치를 배울 기회도 없고 사회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할 기회도 없고.. 결국 평생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착취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리게 될 겁니다.. 이런 사람들만이 모인 사회가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사회에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가 사랑하는 딸을 맡기고 싶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마을 서당의 훈장의 교육방침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었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육의 두 번째 부분은.. 그럼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인성 교육이 아닌 기술적인 교육이 되는 것이지요.. 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요즘의 학교들이 다 잘 하고 있으니... 할 말은 없네요.. 요즘 학교들이 가지는 문제는 인성교육과 바른 가치관 교육이 없는 것이지 기술적 교육이 부족한 것은 아니니까요...

 

아무튼... 17.8세기의 서당 교육... 그 서당 훈장이 가졌었던 "예"에 대한 집념과 학생들이 바른 인성을 가지도록 이끌고자 했었던 그 가치관등은.. 지금의 교회를 이끌어가는 모든 목회자들도 역시 같이 고민을 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뭐.. 우리나라의 교육이 이런 인성교육을 강조하면서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교회가 해야죠... 하나님 백 믿고..

Posted by yy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