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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권 요구가 테러범?…경찰 특공대 투입 ‘참사’ 자초

2009년 1월 21일(수) 8:35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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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협상 시도도 안한채 곧바로 진압나서 ‘시상식적’

김석기 서울청장, 화영볌 등장 소식에 ‘본보기’ 삼아

전문가 “모든 문제 ‘공안’시각 접근땐 충돌 되풀이”

6명이 화마에 희생된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는 집회·시위 등 집단행동에 철권을 휘둘러 온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참사는 생존권과 시민적 권리를 요구하는 행위를 ‘떼법’으로 규정하고 단속과 강공 일변도의 드라이브를 걸어온 신공안정국 흐름의 연장선 위에 있기 때문이다.

■ 무리한 진압 이유와 작전 지시자는?

이번 작전은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경찰은 철거민들의 농성 소식이 알려진 19일 저녁 서울경찰청에서는 김석기 청장과 김수정 차장, 기동본부장, 정보부장, 용산경찰서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특공대 투입을 결정했다. 경찰은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이 특공대 투입을 건의했고, 김 청장이 이를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공식적인 경찰청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어청수 경찰청장은 진압작전 사실을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다고 경찰청 관계자는 전했다.

문제는 이번 진압작전이 철거민들의 농성이 시작된 지 불과 25시간 만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경찰의 경비 분야 전문가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저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 충분히 협상을 벌이고, 그래도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최대한의 안전조처를 마련한 뒤 진압 절차를 밟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경찰은 2005년 6월에 오산 세교택지개발지구 철거민들의 농성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바 있지만, 당시엔 무려 54일이나 기다린 뒤 예행연습까지 거쳐 작전을 펼쳤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는 촛불집회 강경 진압 등으로 정권의 신뢰가 더 커진 김 청장이 경찰청장 내정 뒤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으로 풀이한다. ‘서울 시내에 화염병이 등장했다’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강력한 초기 대응을 통해 ‘본보기’를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다음달 경찰 간부 인사를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김 청장의 강경한 대응 의지에 맞서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위 대처 경험이 많은 한 경찰 간부는 “추운 겨울의 고공농성은 시간을 최대한 끌면서 지치고 고립되도록 만들어가는 게 작전의 기본”이라며 “참모들 중 누구도 경비 쪽 경험이 없는 경찰청장 내정자한테 직언을 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지난해 촛불정국에서 서울경찰청장이 된 이래 강경한 집회·시위 대응을 강조하며 정부와 집권세력의 의중을 충실히 반영해 왔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촛불집회 때 경찰이 과잉 대응한 사실이 없으며, 일본과 달리 무질서하고 불법적인 국내 집회·시위 문화를 바로잡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 틀 만에 진압작전을 펴게 된 것에 대한 경찰의 해명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경찰은 이날 참사 뒤 낸 보도자료를 통해 “도심 테러라고 해야 할 정도로 화염병과 쇠구슬이 난무하는 등 민간 피해가 심각해 빠른 조처가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구체적 피해를 묻는 질문에는 “민간인이 다치진 않았지만, 빈 집에 불이 나고 쇠구슬에 차량 두 대가 훼손됐으며, 차가 막혔다”는 답이 전부였다. 목숨을 담보로 한 작전을 펴야 했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하기엔 민망한 변명이다.

■ 참사 부른 ‘불법 집단행위 엄단’ 드라이브

이번 참사를 더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불법 집단행위 엄단’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의지와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1월 신년사에서 “ ‘떼법’이니 ‘정서법’이니 하는 말을 우리 사전에서 지워버리자”며 공권력을 통한 민의 제압을 예고했다.

경찰뿐 아니라 법무부와 검찰도 ‘떼법 청산’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강경 드라이브에 한몫을 맡아 왔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경찰의 시위대 검거 등 정당한 직무집행에 대한 과감한 면책을 보장해 적극적으로 공권력 행사를 독려하겠다”고 공언했다. 검찰은 이른바 ‘떼법 지수’를 만들어 해마다 발표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운 상태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신년사에서 “경제정책과 관련된 노사분규나 불법 집단행동이 대폭 증가할 텐데, 선제 대응하고 ‘불법필벌’의 원칙을 반드시 관철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행정력이나 정치로 풀어야 할 사안들까지 ‘공안’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공권력과 시민의 충돌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계수 건국대 교수(법학)는 “서울시청이나 용산구청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경찰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 정부 기조가 문제”라며 “법과 공권력으로만 접근한다면 다른 부처는 필요 없이 법무부와 경찰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석진환 김남일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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