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nate.com/view/20100418n01105
[광주=뉴시스]송창헌 기자 = 추위를 피해 들어간 병원에서 정수기 물로 허기진 배를 채워오던 20대 청년이 못된 손버릇으로 옥살이 위기에 놓였다가 법원의 선처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죄는 밉지만, 워낙 딱하다"며 구구절절이 애틋한 사연을 담은 법원조사관의 피고인 양형조사 보고서가 관용의 단초가 됐다.
부 모를 잃고 5살 때부터 고아로 자라온 김모씨(29). 고아원 형들의 폭행과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중2때 일찌감치 학업을 접고 고아원을 뛰쳐나온 그는 인천과 대전을 전전하며 구두공장과 식당, 찜질방 등지에서 일하며 자수성가를 꿈꿨다.
하지만 일하는 곳마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1년 이상 근무하기가 어려웠고, 임금은 체불되기 일쑤였다. 가끔은 고아원 동료 원생들이 찾아와 가재도구를 훔쳐가기도 했다. 그나마 모아둔 돈도 결핵 치료를 받느라 병원비로 몽땅 날렸다.
유일한 혈육인 형(31)과도 7∼8년째 연락이 끊겼다. 2년간 동거해온 애인과도 여성측 부모의 반대로 헤어졌다. 비빌 언덕도, 경제적 여유도 없던 그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도둑질을 하게 됐고 결국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고단한 삶을 접고 지난해말 광주로 내려왔지만, 주민등록이 말소돼 일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단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오던 그는 지난 1월 기거할 곳이 마땅치 않자 추위를 피해 대학병원으로 들어가 정수기 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에 허덕이던 그는 집행유예기간 중임에도 또다시 남의 물건에 손을 대게 됐고, 환자와 병문안 여성의 지갑을 훔친 사실이 들통나면서 실형 위기에 놓였다.
재판부는 그러나 김씨가 법무부 보호시설에서 막노동으로 번돈을 꼬박꼬박 적립하며 재기를 꿈꾸는 등 모범적인 생활을 해온 점을 중시해 법원조사관에게 객관적 양형자료를 작성해줄 것을 요구했고, 조사 결과 '법으로만 따질 수 없는' 딱한 처지와 심성이 하나 둘씩 확인됐다.
재범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조사관은 미합의 피해자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원만한 합의의 길을 열어주는가 하면 합의서에 인감증명서가 첨부되지 않은 사실을 알고는 전화로 꼼꼼히 확인하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공판검사도 애뜻한 사연을 인정해 기소 당시 구형한 징역형을 벌금형으로 낮췄고, 재판을 맡은 광주지법 형사2단독 남성민 부장판사도 꼼꼼한 양형조사와 검찰의 선처를 존중해 지난 15일 1심 선고 공판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광주지법 양영희 공보판사는 18일 "앞으로도 객관적인 양형조사를 강화해 범죄에 합당한 양형을 이끌어낼 것"이라며 "다만 양형조사 담당이 고작 2명에 불과하고, 구속 피고인의 접견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점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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