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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건물 존재하지 않아, 철거해도 된다"…원주민 "피땀이 묻어있는 내 집인데…"

[CBS사회부 조은정 기자] "한푼 두푼 모아서 어렵게 장만해 30년간 살았던 내 집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없는 건물이라니요"

내 집이라고 여기고 수십년간 살았던 곳이 어느 순간 없는 건물이 된다면 어떨까?

서울 성북구 종암동 신광연립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바로 이같은 믿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연립주택을 둘러싼 기구한 사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주민들은 당시 1979년도에 새로 지어진 건물을 정식 분양받기 시작했지만 토지 등기는 하지 못했다.

건물 발주자가 토지에 대한 중도금을 납부하지 못해 건물 등기만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주민들은 서류상 건물은 소유하고 있지만 땅에 대한 권리는 없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법리에 무지했기에 매달 상하수도, 전기세 등 각종 공과금과 재산세를 납부하며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그곳에서 20여년을 살았다. 토지 반환금을 왜, 어떻게 내야하는 지도 몰랐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98년도에 땅이 새 주인에게 넘어가면서 문제는 불거졌다. 강남의 부동산 부자라는 땅주인은 주민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법적 소송을 시작했다.

42세대 가구를 13곳으로 나눠 소송이 시작됐지만 그날그날 생계 잇기에 바쁜 주민들은 변호사도 제대로 선임하지 못했다. 재판에 출석하지 않거나 내야 할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다.

땅주인은 여러 차례의 소송에서 이겼고 2003년 12월 24일 대법원으로부터 "건물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건물을 철거해도 된다"는 마지막 결정문이 내려졌다.

멀쩡한 건물은 나대지로 분류됐고, 건물에 대한 권리까지 소멸돼 주민들은 남의 땅에 불법으로 거주하는 신세가 됐다.

대법원의 결정 이후에도 10년 넘게 주택에 살았던 주민들은 올해 들어 건물 철거가 임박했음을 깨달았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법률관리공단 등에 찾아가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너무 늦었다"는 대답 뿐이었다.

법원의 첫 철거 집행이 있었던 지난 16일에는 용역업체 직원과 주민들간에 격렬한 몸싸움이 일었다.

마지막 남은 22세대의 주민들은 기초생활수급자, 70대 독거노인 등 대부분 갈 곳이 없는 영세민들이다.

이들은 언제 집이 헐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건물이 지어질 때부터 살았던 원주민 박원규(68)씨는 "내가 떳떳하게 구입해 30년을 살아온 내 집에서 한푼도 못 받고 쫓겨나는게 말이 되냐"며 가슴을 쳤다.

호떡을 팔며 모은 돈으로 어렵게 집을 장만했다는 정형헌(55)씨도 "피땀이 묻어있는 내 집인데 법을 몰랐다는 이유로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가진 자의 횡포로밖에 생각이 안 든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꼬박꼬박 납부해온 상하수도세, 전기세 고지서 뭉치를 보여주는 주민들은 아직도 이곳이 법적으로 내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김남금 변호사는 "지금처럼 대지와 건물이 분리되지 못하도록 하는 강행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84년도에 집합건물법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혼란스러운 시기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근 땅주인이 건물 부지를 고려대에 팔았다는 소문이 들려와 학교에 찾아갔지만 고려대에서도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해 답답하기만하다.

"당장 이사하라면 이사 갈 비용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최소한의 보상을 받지 못하면 여기서 죽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주민들은 마지막 바람은 소박하지만 절박했다.

aor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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