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 7: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 7: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마 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비판을 했을 때 나를 비판하는 주체가 누구이냐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과연 나를 비판하는 주체가 내가 비판했던 사람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일까요? 사실 본문에는 주어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문맥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 같은데.. 마태복음 7:1절과 비슷한 형식을 가진 패턴이 마태복음 6:14-15절에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요 우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나님도 용서하시리라는 부분입니다.. 용서하면 용서 받고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하는 구조가 7:1절과 똑같지요.. 또 여러 구절에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베푸시는 주체는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주변 다른 구절들과의 연결성을 보았을 때 마태복음 7:1절에서만 유독 우리를 비판하는 상대가 사람일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람을 비판하였을 때 우리를 비판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이해를 하는 게 더 그럴 듯 합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될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남을 판단하는 그 잣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판단하시겠다는 것이니 얼마나 무시무시합니까..

 

한편 구절을 읽어 내려가다 6절에 이르면 갑자기 쌩뚱맞다는 느낌이 듭니다. 앞의 절들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게 있는데 이 부분은 갑자기 문맥의 내용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매번 당혹스러움을 느꼈었는데 Morris와 ESV의 Matthew 주석 부분을 쓴 저자에 의하면 이 말씀은 7장 1절부터 5잘까지 말씀의 반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ESV 저자에 의하면 개는 이스라엘에서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끊어졌거나 또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대해 적대시하는 부정한 것을 지칭하는 데 사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돼지는 구약의 율법에서 보면 부정한 동물로 나오는데 이스라엘 민족 입장에서는 거부해야 할 무엇인가로 인식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개와 돼지에게 거룩한 것과 진주를 주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거룩한 것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 무엇인가이고 진주는 하나님 나라를 묘사하는데 사용이 됩니다. (마 13:45-46) 거룩한 것이든 진주이든 하나님 나라의 비밀... 즉 복음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6절 말씀은 기독교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되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고 이해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너무 힘쓰고 애쓰지는 말라는 것이지요.. (마 10:14; 행 13:46, 18:6; 딛 3:10-11)

마 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마태복음 7:6절의 말씀은 지금까지 제가 깊이 생각을 해 보지 못한 말씀이라서 살짝 당황스러운 말씀이네요.. 관용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 앞으로 생각하면서 묵상하면서 살아야 될 것 같아요..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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