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 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마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말씀도 많이 들어본 말씀인데.. 중언부언.. 사실 중언부언이 무슨 뜻일지에 대해서는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 단어는 헬라어로 βατταλογήσητε(블라탈로게세테)라는 단어로 신약에서는 여기에서만 쓰였고 다른 헬라어 문헌에서도 2번 정도밖에 안 쓰인 단어로.. 학자들은 이 단어의 의미를 babble정도로 이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면 자신이 자신의 입으로 계속 반복적으로 되뇌이면서 그 뜻이 무엇인지를 신경 쓰지 않고 되뇌인다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되뇌었다기 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반복적인 기도문을 그냥 기계적으로 중얼 중얼 외웠다는 이야기에 더 가깝습니다.. 그 당시의 헬라 사람들은 이렇게 무슨 뜻인지는 고려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기도문을 기계적으로 계속 중얼 중얼 되뇌이는 것을 신들이 기뻐한다고 생각을 했답니다..

그리고 밑에 나오는 기도는 주기도문인데요.. 8절에 이야기 하신 것 처럼 이미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한 것을 기도하기 전에 알고 계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중얼 중얼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밑의 주 기도문 정도이면 기도는 충분히 하나님께 상달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주기도문의 형식은 당시 이방인들이 그들의 성전에서 기도하는 기도문과 비교를 하면서 이해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뭐 저는 이방인들의 기도문은 본 적이 없어서 절대적인 비교는 불가능 합니다만.. 내용으로 보아서 두 가지 정도는 차이가 있었을 것 같아요.. 하나는 7절에서 말씀 하신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라는 언급과.. 또 예수님이 주신 기도문이 실제로 상당히 짧다는 것을 보았을 때 기도의 간결성이고요 한데요.. 즉 짧은 기도도 통한다는 것이지요.. 또 앞 뒤 문맥이 계속 가식을 행하지 말라는 문맥인 것을 보았을 때 이 말씀도 가식과 무관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기도할 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긴 시간의 기도가 아니라 짧은 시간이라도 진정성 있게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는 기도하는 내용을 기도하는 사람이 알고 있다는 부분이네요.. 당시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기도하는 내용에 대해 생각을 해 보지 않고 단지 주문을 외우듯이 외우는 습관이 있었는데 적어도 기도할 때 뜻은 알고 기도를 하라는 것이지요.. 다시 진정성으로 돌아가네요... 진심으로 기도하라는..

 

중언 부언이라는 단어의 의미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말을 계속 되뇌이는 부분이 포함되는데 이 부분을 방언과 연결을 시켜서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방언은 이교도적인 종교행위일 뿐 성경적인 것은 아니다.. 라는 주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이러한 시각에 대해서 상당히 탄탄한 지지기반을 제공하는데요.. 고린도전서 14:2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이야기 하기를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인간에게 말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알아듣는자가 없다고 또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 또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비성경적이다.. 라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어쨋든.. 기도의 핵심은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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