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05 주일예배설교.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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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2: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사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사 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사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I. Introduction

젊은 예배에는 오늘 처음 서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하고 나누고 싶은 주제는 전도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모태 신앙인으로 자라서 아주 어릴때문에 신앙 안에서 자라왔습니다. 자라오면서 늘 들었던 이야기가 전도 하라는 이야기였지요.. 그런데 이 전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저는 매우 큰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것이지요.. ^^;

저는 굉장히 극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혈액형이 소심의 상징인 A형이고요.. A형 중에서도 소심한 사람을 표현할 때 사람들이 AAA라고 표현을 많이 하지요.. 좀 그랬습니다. 낮선 사람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는 것을 많이 두려워했더랬지요.. 그냥 단순히 어려움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지금은 좀 나아지기는 했습니다만.. 따라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매우 서툴고 어려워합니다.

그런데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관계라는 관문을 반드시 지나야 합니다. 대화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그러면서 전도가 진행이 되니까요.. 전도 자체를 혐오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를 만드는 것을 어려워하는 저에게는 이게 쉽지 않은 문제이지요..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물리적인 장벽으로 인해서 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고민을 터 놓으면 제 주위에 있던 분들은 10이면 10 모두 그것은제가 잘못이라고 지적을 하더군요. 제가 성격을 외향적으로 고쳐야 하고 그래서 전도를 해야 한다고들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뭐 덕분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제 성격을 고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편하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꼭 전도 뿐 아니라 사실 이 문제는 제 삶을 어렵게 만들고 제한하는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저 나름대로는 참 많이 고민하고 참 많이 기도하고 했었는데.. 아직도 해결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생기는 것이 절망이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전도도 제대로 못하고.. 그런 내가 과연 목회자가 될 자격이 있을까?? 뭐 이런 고민들이 생기더군요..

그러면서 한 편으로 드는 생각은 세상에는 수 많은 내향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내향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다 잘못된 것일까? 성경을 외향적 사람들만이 올바른 사람들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오늘의 본문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 제가 가지고 있었던 고민을 완전히 해결을 해 주지는 못했지만, 어느정도 희망을 발견할 수는 있었습니다.. 같이 한 번 보시지요.


II. 선교의 의미

1. 이사야와 마태복음

이사야 2장 1-4절 말씀은 구약이 이야기하는 선교, 또는 전도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반면 마태복음 28:19-20은 신약이 이야기하는 선교, 또는 전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이 두 말씀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부분들을 발견을 할 수가 있습니다.

먼저 이사야 2:2절과 마태복음 28:19절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또 이사야 2:3절과 마태복음 28:20절이 서로 대조를 이루는 부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2:2절을 보면 선교 또는 전도 대상자들이 하나님의 전으로 몰려드는 구조를 볼 수가 있습니다. 반면 마태복음 28:19절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선교 또는 전도 대상자들을 향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흔히 많은 선교사들이 마태복음 28:19-20절을 주해 하면서 마태복음 28:19절에 있는 가라는 동사를 강조해서 우리가 선교지를 향해 나가야 한다는 부분을 강조를 하곤 합니다. 19절에 있는 여러 동사들 중에서 가라는 동사만 진짜 동사이고 나머지는 모두 분사들이라는 것이지요.

이사야 2:3절과 마태복음 28:20절은 다시 가르침이라는 주제하에 서로 대조를 이루는데 이사야 2:3절은 사람들이 율법을 듣기 위해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주체가 이사야에서는 하나님 자신으로 나타납니다. 반면 마태복음 28:20절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주체가 예수님의 제자로 나타나게 되지요..

단순 비교를 하게 되면 구약과 신약이 이야기하는 선교 또는 전도 개념에 다음과 같은 차이가 나타나게 됩니다.

구약은 전도 대상자들이 하나님의 전으로 모여드는 구조이고 신약은 제자들이 전도 대상자를 향해서 밖으로 나가는 구조입니다. 구약은 율법을 가르치는 주체가 하나님이고 신약은 율법을 가르치는 주체가 예수님의 제자들인 것이지요..

따라서 단순 비교를 통해 보게되면 구약과 신약에 있어서는 전도 또는 선교 패러다임에 변화가 생겼고, 우리는 신약의 패러다임을 쫓아가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게 됩니다. 결국 전도하러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럴 때는 정말로 저처럼 내향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이 땅위에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그런데 저는 스스로 이러한 구약과 신약을 단순하게 비교하는 성경 해석 방법에 대해서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구약과 신약은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구약을 폐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약을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지요.. 따라서 이사야 2장의 말씀과 마태복음 28장의 말씀을 서로 다른 말씀으로 해석을 하고 마태복음 28장이 이사야 2장의 말씀을 폐기하고 대체하는 말씀인 것처럼 이해를 하고 해석을 하는 것은 구약과 신약의 일반적인 관계를 왜곡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바른 성경적 접근은 마태복음 28장이 이사야 2장의 말씀을 더욱 온전히 하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고 접근을 해야 하겠지요.. 즉 마태복음 28장에서 이사야 2장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을 푸는 열쇠는, 구약과 신약의 성전의 개념을 살펴보면 풀 수가 있습니다.

 

2. 구약과 신약의 성전의 개념

본문을 다시 한 번 볼께요. 이사야 2장 2절을 보면 여호와의 전의 산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은 시온 산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의 성전이 건설된 장소로 구약에서 보통 예루살렘 또는 성전과 같은 의미로 많이 사용이 되는 단어입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법을 보면 구약의 모든 제사는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서만 드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12장 5-6절을 보면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에서만 제사를 드리도록 제한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반면 신약에서의 성전의 개념은 고린도전서 6장을 보면 알 수가 있는데, 더 이상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신약에서의 성전은 우리들의 몸 자체가 성전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의 개념이 결국 구약과 신약의 선교 또는 전도의 차이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3 전도는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모으는 행위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전도는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에게로 불러 모으는 행위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있어서의 전도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구조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으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됨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유동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성전이 움직인 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밖으로 나가서 전도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구요. 하지만 구약시대로부터 이어져온 전도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도는 여전히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전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저와 여러분들 안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느냐로 귀결이 됩니다.

전도와 관련해서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오해하는 부분이 하나가 있습니다. 전도의 주체가 나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의 주체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나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 무엇때문에요? 내 안에 살아서 숨 쉬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이상 우리 안에 하나님이 살아서 숨쉬고 계실 것이고, 우리 안에 살아서 숨쉬는 그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백성들을 우리에게로 보내시는 것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내가 과연 제대로 된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체크해 보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겁니다.


III. 성전의 기능

우리의 성전으로서의 기능은 우리의 창조 목적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창조된 목적은 하나님의 인격으로 살기 위해 창조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 그대로 삶으로 인해서 우리를 대하는 창조물들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확인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 하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의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의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은 단순한 verbal teaching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life example을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실때에는 단순히 verbal teaching만으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길게는 약 3년, 짧게는 약 2년간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고 살면서 직접 제자들을 가르치셨었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몸소 본을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전도는 단순히 노방전도 나가서 4영리 전하고 선교활동 나가서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여러분들의 삶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답게, 여러분의 모든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고 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여러분 삶의 총체적 변화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 변화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삶에 동참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의 삶에 변화는 시작이 됩니다.


IV. Conclusion

5년 전.. 미국에 들어와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한국에 있는 자매를 한 명 소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을 했더랬지요.. 저는 미국에 있고 자매는 한국에 있는 관계로 메일과 네이트온으로 교제를 했습니다. 그러다 대략 방학을 2개월 남겨놓고 자매를 보기위해 비행기표 티켓을 끊었습니다. 궁금했거든요.. 어찌 생겼을까.. 그런데 티켓 끊고 티켓을 끊었다고 메일을 보내고 몇 일 되지 않아서 이별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유를 확실하게 이야기를 안 해 주더라고요.. 답답하더만요..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자매의 집안에 어려움이 있었다나봐요..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어요.. 한국 들어가서 한 달간 큰 의미 없이 그냥 놀다 들어왔습니다.

1년이 지난 후에 다시 연락이 왔어요.. 매우 반갑게 받아주었고 다시 결혼을 고민을 했고 진지하게 교제를 시작을 했습니다. 그 이전에 자매한테 잘 못해준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 딴에는 정말 최선을 다 했더랬어요.. 또 자매를 보기 위해 비행기표 티켓을 끊었습니다. 전에 한국에 들어갔을 때에는 헤어진 상태라 못 봤거든요.. 역시 방학이 2개월정도 남은 시점이었어요. 티켓을 끊고 나서 몇 일 지나지 않아서.. 다시 이별 통보를 받았습니다. 정말로 허탈하더군요.. 역시 한국 들어가서 한 달간 걍 놀다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간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냈습니다.

2년 후에 다시 그 자매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역시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다시 교제를 시작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어찌 되었을까요?? 역시 방학을 2개월 남짓 남겨둔 어느날.. 다시 이별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거 무슨 이별연습 시리즈도 아니고 말이지요.. ^^;

세 번째 그 친구를 만났을 때는 사실 다른 사람을 선을 통해서 만났던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그 친구를 선택을 했었지요.. 처음부터 그 친구 성격상 세번째 이별이 있을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 사실을 알고 각오하고 그 친구를 받아들였지요.. 그리고 결과에 상관 없이 최선을 다 해서 사랑했었고.. 결과적으로는 세 번째 이별 통보를 받았었지만 처음의 그 결정을 후회한적은 없었어요.. 마지막 그 친구가 떠나갈때도 그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었지요.. 아직도 사랑한다고..

바보같죠?? ^^; 그런데 저는 그런 바보로 살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저한테 그런 바보같은 사랑을 보여주셨거든요.. 제가 많이 느려요..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학습 능력도 느리고..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러한 사건들에 대해 반응하는 속도도 느리고.. 하여간 제 성격은 참 많이 느린데.. 한국 사회는 빨리 빨리 사회잖아요 ^^; 누구도 저를 인정을 안 해 주더군요.. 오직 한 분.. 하나님만 제가 느리다는 것을 인정해주시고.. 또 제가 충분히 느끼고 반응하도록 기다려 주셨어요.. 저는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제가 바보인 줄 알았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느린 사람들에 대해 충분한 기회를 주는 것에 굉장히 인색해요.. 따라서 저는 항상 저능아,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부적응아로 자라왔기에 제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을 하면서 자라왔어요.. 그런데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은 저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바보가 아니라 단지 좀 느린 것 뿐이라고.. 그러시면서 저를 이해해주셨고.. 그러한 하나님의 이해와 사랑때문에 지금껏 버티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냥 그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또 알려주고 싶었지요.. 어떠한 잘못도 용서해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 내가 그 친구에게 그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으면.. 그래서 그 친구가 다시 그 사랑을 그 친구의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었으면.. 그 대상이 기독교인이 되었든 아니면 비기독교인이 되었든 말이지요.. 제가 육체적으로 강하지는 않기 때문에 몸을 사용하는 일에는 서툴러요.. 관계에도 서툴러서 말로 전도하는 것도 저는 잘 못해요.. 하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나에게 상처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품는 것은.. 그래도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직접 다른 사람을 전도하는 것은 좀 서툴러도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행동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이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렇게 좀 바보처럼 굴었지요..

뭐 고통스럽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고통 속에서 인내하고 아픈 것을 참아내는 것은 제가 잘 하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직접적전 전도를 포기해도 된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에요.. ^^;

 

여기까지는 제 스토리였어요.. 이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 안에서 여러분들의 전도 방법을 고민할 차례인 것 같네요..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실 수 있으신가요?? 제가 한 가지 덧붙여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들 중 누구도 온전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보기에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도 부족한 점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여러분에게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의 심장을 하나님께 먼저 내어드리세요.. 그런 후에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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