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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Introduction

(들어가는 질문)

기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왜 기도를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무엇이 우리의 욕심에 이끌린 기도가 아닌 참된 기도일가요?

모태신앙인으로 자라왔던 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몇 가지 기도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왜 기도를 해야 할까?? 내가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내 필요를 모르시나?? 내가 하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을 근거고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루어 주신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 오랜 고민이었는데.. 최근에 이 고민들에 대한 실마리를 좀 찾았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제가 얻은 실마리에 대해서 좀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발견한 것이 우리가 전에는 몰랐었던 어떤 혁명적인 내용인 것은 아니고요, 단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조금 더 명확히 해 주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결론을 말씀을 드리고 이후에는 왜 이런 결론이 도출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1. 우리는 이 땅에 왕으로 창조 되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좀 정리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가 되겠지요. 야고보서 4장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다 아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적용하려면 좀 어렵습니다.. 과연 무엇이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이고, 무엇이 제대로 구하는 것일까요?? 정답은 없겠지만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을 해 보면 대략 가이드라인은 잡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날 빛과 어두움 해, 달, 계절
해는 낮, 달은 밤을 주관
넷째 날
       
둘째 날 궁창과 하늘 바다의 생물
하늘의 새
다섯째 날
       
셋째 날 땅과 바다
채소와 나무
땅의 짐승, 가축 여섯째 날
       
여섯째 날 인간을 창조 여섯째 날
       
일곱째 날 하나님의 안식 일곱째 날

여기에 나오는 표는 창세기 1장에 나와 있는 천지의 창조 순서를 표로 그린 것입니다. 이 창조 순서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정보를 하나 제공해 주고 있는데, 먼저 창조된 창조물들이 나중에 창조된 창조물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구조로 되어 있고, 나중에 창조된 창조물들은 먼저 창조된 창조물들을 다스리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 순서로 보았을 때 인간은 모든 창조물들이 창조된 후 제일 마지막에 창조가 됩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모든 창조물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왕으로 창조되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위의 구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온 창조물의 왕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왕권에 대해 이야기 하는 구절은 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눅 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누가복음 22장의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믿는 자들의 왕권을 인정하셨다는 이야기이지요. 이 이야기는 단순히 예수님이 자신의 열 두 명의 제자들을 아껴서 특별히 그들에 우리가 세상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는 지배권력을 주려고 의도하신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셨었던 그 왕권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이해해야 옳을 것입니다.

고전 6: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히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고린도 전서 6장과 히브리서 1장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우리를 보좌하기 위한 영이고 우리는 장차 천사까지도 재판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 모든 말씀의 근거는 결국 창세기 1장으로 모이게 됩니다. 천사가 우리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은 결코 우리가 잘났거나 천사들보다 월등한 지위에 있기 때문은 아닐겁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왕권을 affirm 하신 이유가 단순히 우리를 좋아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우리 인간이 창조될 때 우리의 창조 목적이 하나님의 다른 창조물들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일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왕권을 affirm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전에 없었던 어떤 새로운 지위를 부여하시는 것이 아니라 창조시에 우리에게 주어졌었던 우리의 권리와 책임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구원은 단순히 우리의 권리의 회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의무의 회복이기도 합니다. 창조시에 우리가 이 땅을 통치하는 통치자로 지어졌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리가 회복됨과 동시에 이 땅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통치해야 할 의무 역시 우리 안에서 회복되는 것입니다.


2. 브룬디를 향한 우리들의 책임

아프리카에 브룬디라고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전체 인구 800만에 면적은 남한의 약 1/4 정도 되는 나라로 작은 나라입니다. 1962년에 독립한 이후로 끊임없는 내전에 시달려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여력이 별로 없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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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ndYooB4iYQo

여기에서 질문 들어갑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 브룬디의 안녕에 책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기 때문에 누가 되었든 예수의 은혜에 의해 기독교인이 된 사람은 통치자로서의 책임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정작 문제는 이것 입니다. 우리가 브룬디의 안녕에 대한 책임을 인정을 한다 하더라도 과연 우리에게 브룬디의 안녕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먹을 것이 없어서 먹지 못하는 아이들, 작은 병에 걸려도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죽어가는 저 아이들을 우리들의 힘으로 살려낼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다른 문제 하나 더 보시겠습니다. 2011년 9월 6일 매일 경제 신문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579473
한 부부가 모텔에 투숙 했다가 같이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부에게 남겨진 재산은 80만원이 전부였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부부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을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안 되니까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자살이었겠지요.. 빈부의 양극화와 경제 문제는 이미 인류 보편적인 문제로 한국에서의 사망 원인 중 1위는 암이고 2위는 자살이라고 합니다. 그 자살 원인 중 1위가 경제문제라고 합니다.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은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한 사안도 아닙니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빈부 문제가 심하다는 이야기겠지요. 경제적인 문제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위의 부부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들 동의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문제 우리와 관계 없는 문제 아닙니다. 이 땅에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통치자로서 우리가 돌아보고 책임져야 할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브룬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책임은 져야 하지만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통치 행위의 연장으로 우리가 책임져야 할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 없으니 우리의 진정한 왕이 되시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신 하나님께 원조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야 할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의 통치 행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로 그 일은 우리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이 땅을 다스리는 것이고, 따라서 이 땅의 통치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대리 통치하다가 벽에 부딪혀서 하나님께 구하는 원조 요청을 하나님은 응당 들으실 책임이 있으신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우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물들인 천사까지도 부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까지 들으신 분들은 기도가 단순한 하나님과의 대화가 아니라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궁극적인 무기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면서 항상 우리가 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해내야 하는 아이러니 가운데 빠져서 삽니다.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의 삶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들을 우리가 감당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기도 없이는.. 하나님에 대한 지속적인 원조 요청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3. 기도의 능력

계 8: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계 8: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계 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계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 8: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계 8: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계시록 8장을 보면 성도들의 기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기도를 하면 하늘의 금 대접에 향의 형태로 그 기도들이 담깁니다. 그 기도가 어느 정도 쌓이게 되면 향기가 하나님께로 올라가게 되고 그 후에는 천사들의 손에 의해 제단의 불과 함께 이 땅에 쏟아지게 되며, 그랬을 때에는 하나님의 액션이 나타게 됩니다. 이 것이 기도가 일 하는 매카니즘 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막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보니 예수의 다른 제자들과 한 아이의 아빠 그리고 서기관들이 소동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가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무슨 일이냐 묻자 아이의 아빠가 예수께 와서 자기 아들이 귀신이 들려 예수의 제자들에게 데려갔는데 능히 고치지 못하더라 이야기를 하지요.. 결국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 줍니다. 제자들이 이 상황을 기이하게 여겨서 예수에게 왜 다른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느냐 묻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계시록 8장의 말씀이 이 사건을 연결시켜서 예수의 기도가 어떻게 일을 했는지 그 메카니즘을 한 번 살펴 보도록 하지요. 예수가 기도를 하자 예수의 기도가 하늘 보좌 앞에 있는 금 대접에 담기게 되었고, 그 기도가 차자 그 향기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고, 그러자 한 천사가 제단의 불을 그 대접에 담아 이 땅에 던집니다. 제단의 불을 대접에 담아 이 땅에 던지는 행위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아이의 귀신이 떠나간 것이지요. 이 모든 사건은 결국 예수님의 기도에서부터 시작이 된다는 것을 주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제자중 한 명이 예수에게 그 능력의 근원을 물었을 때 예수는 “기도” 라고 담담히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오래 묵혀왔던 질문 한 가지를 좀 생각을 해 보도록 하지요..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기도만 해도.. 변화가 일어날까요?? 많은 분들은 우리가 기도와 더불어 어떤 행동을 해야만 우리가 원하는 변화가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까지 살펴 본 성경에서의 메카닉을 살펴보면, 우리가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고 골방에서 기도만 해도 변화는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변화는 우리가 어떤 액션을 취할 때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 보좌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담긴 금 대접에 제단의 불을 담아 이 땅에 던질 때, 즉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이 있을 때 만들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Conclusion

지금까지 우리는 기도에 대해 쭉 살펴보았습니다. 마치는 입장이니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을 한 번 정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시작 할 때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이제는 그 이유에 대해서 이해를 하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왕으로 창조 되었습니다. 구원은 우리 권리의 회복이면서 또한 의무의 회복의 성격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원 받은 우리들은 이 땅의 왕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이 땅을 통치할 의무를 동시에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아까 예를 든 브룬디 문제도, 자살 문제도 우리의 책임에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두 우리의 책임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도 우리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극히 제한적이고 극히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통치를 위해 하나님께 원조를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실제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통치행위를 하면서 하나님의 원조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은 모두 이해 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우리가 통치 행위를 함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며 동시에 가장 강력한 통치 무기가 됩니다.

예화 하나 들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많이들 아실 겁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 30살즈음에 브리스톨 지역에 고아원을 열어서 평생 10만명 이상의 고아들을 돌보았던 기도의 용사로 평생 5만번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합니다. 이 분이 고아원을 운영했던 방식이 참 특이한데 부자들이나 정부를 비롯해 그 누구에게도 재정적 도움을 요청하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평생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에 의존해서 고아원을 운영을 하셨다 하는군요. 하지만 63년간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단 한 번도 고아들을 굶긴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이러한 삶은 기도에 대한 좋은 교과서일듯 합니다.. 우리도 일단 기도에서부터 시작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목숨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를 놓으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놓는 것입니다.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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