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파일 다운받기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하여

본문 : 사 49:9, 갈 5:1

이사야 49장, 그리고 61장을 보면 자유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전통적으로 메시야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질 자유를 예언하는 구절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5:1절은 이사야 49장과 61장의 자유에 대한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을 보면 이 부분이 헷깔립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데.. 나는 정말 자유로워졌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을 때,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으실 것 같아요.. 오히려 삶의 제약이 많아짐으로 인해서 자유가 더 위축된 것으로 보입니다. 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이 많은지 말이지요..

오늘은 우리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자유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과연 기독교에 진정한 자유가 있는지.. 기독교 안에 자유가 있다면 우리가 그 자유를 어떻게 하면 누릴 수 있는지 등을 말이지요..

기독교의 자유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출애굽 과정을 한 번 돌아보았으면 좋겠어요.. 출애굽은 성경 전체의 다리를 놓는 굉장히 큰 신학적 흐름이 담겨 있습니다. 이 부분은 사실 우리 기독교인의 삶을 설명해주는 굉장히 큰 틀입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실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보면 애굽에서 여러가지 착취에 시달리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신 것이지요.. 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이후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을 보면 좀 희한합니다. 애굽 땅에서는 힘은 들었지만 목숨의 위협을 받아야 할 정도는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온 후로는.. 하나님이 자유를 주신다고 끌고 나오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 연속되는 거지요. 먼저 나오자 마자 애굽에서 군대가 출동합니다. 그래서 맞아죽을 상황에 직면하게 됐지요.. 다음은 물이 없어서 탈진해 죽을 위험에 처합니다. 그리고는 음식이 없어서 굶어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지요.. 나중에 가나안 땅에 당도했을 때에는 장작개비를 들고 철기병과 맞서서 싸워야 할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상황을 자유라는 단어와 한 번 매치를 시켜보세요..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유라는 것을 주신게 맞나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자유는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틀을 깨야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대단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물이 없는 곳으로 다닐 수 있는 자유를 주셨고, 음식이 없는 곳으로 다닐 수 있는 자유를 주셨고 또 이스라엘보다 힘센 군대와 대항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기존에 세상적 가치관으로 보았을때에는 도저히 납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을 이스라엘 민족이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자유인 거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 자유를 어찌했습니까? 제대로 누리지 못했지요. 왜 그랬을까요?? 기독교의 자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자유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의지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물이 없는 곳을 다닐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물이 없어도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물이 없는 곳에서도 물을 공급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음식이 없는 곳을 다닐 수 있는 자유를 누린 이유도 이스라엘 민족이 음식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음식을 공급해 주셨기 때문이지요. 강한 군대와 맞짱 뜰 수 있었던 이유도 이스라엘 민족이 그 군대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군대와 싸워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이처럼 이스라엘의 자유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의지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자유를 누릴 수 있으려면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수반이 되어야 했겠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고 결국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말았지요..

우리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고,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적어도 먹을것에 대해서 그리고 입을 것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아도 될 자유가 허락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 왔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를 하고, 또 하나님은 그것을 요구를 하십니다. 그런데 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경험을 했었던 목숨의 위협에 직면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러한 목숨의 위협.. 우리의 불안함으로부터 자유로 우리가 이동하기 위해서는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보다 더 굳건함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하겠지요


문제는 이 믿음이라는 것이 우리 마음대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한 순간에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쌓여가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기타를 배울 때였어요. 처음 기타를 배울때는 코드 하나 잡고 음 띵가 띵가 치고 그리고 다음 코드 잡고 음을 띵가 띵가 치고.. 기타가 손에 안 익어서 참 힘들었었지요.. 기타는 찬양을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 배우는건데.. 오히려 찬양에 방해가 되어버렸었지요.. 그런데 기타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기타를 치면서 얼추 찬양을 부를 수 있게 되자 기타는 저에게 여러가지로 유익을 주기 시작을 했습니다. 찬양 뿐 아니라 기도 할 때도 제 스스로 기타 반주를 하면서 찬양을 하며 기도를 하게되면 그냥 기도할때에 비해서 저에게 편안함을 주곤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이러한 관계가 아닐까 싶어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사는 삶은 처음에는 우리의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아서 잘 안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따라 사는 광야같은 삶에 우리가 익숙해 진다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우리에게서 많이 성장한다면.. 그때는 우리가 기독교에서 이야기 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겠지요.

Posted by yy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