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가복음 15:21-39

Introduction

제가 한 상담사에게 들었던 일화입니다. 한 부부가 상담사를 찾아왔답니다. 부인쪽의 이야기는 남편이 도통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것이었고, 남편쪽의 이야기는 도대체 저 여인네가 뭘 원하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답니다. 그래서 참 곤란한 경우를 당했던 케이스였습니다..

서로 다른 두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나누게 되면 서로 사랑하는 증표로 서로에게 맞춰주기를 원하게 됩니다. 서로에게 맞춰주는것은 서로가 서로를 향한 사랑의 한 표현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방이 도무지 내 마음을 몰라주고 변하지를 않는다고 한다면, 그 관계는 지속시키기가 참 힘이 들겁니다. 위에 말씀드린 두 부부의 문제가 그러한 문제입니다..

이 변화의 문제는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간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춰서 변해가는 과정은 필수과정입니다.. 마치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해서 서로에게 맞춰주듯이 말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가야 할까요? 상당히 다양한 답변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정답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왜 우리 변화의 핵심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인지는 오늘은 시간의 제약때문에 제가 자세하게 말씀을 드릴 수 없겠습니다. 이 주제만 1시간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닮아가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무엇이냐는 것이지요..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처지는 위의 예에서의 남편의 경우와 마찬가지가 될 겁니다. 부인은 맨날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남편의 입장에서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부인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시켜줘야 남편이 거기에 맞춰줄텐데.. 위의 사건의 경우는 부인이 그것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따라서 남편 입장에서도 굉장히 답답한 케이스였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따라가야 할 예수님의 모습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있겠지요..

Transition: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주제는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Body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때마침 오늘의 본문 말씀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부분이로군요.. 마침 잘 되었네요.. 오늘 때를 잘 만난 것 같습니다.

먼저 오늘 제가 사용할 접근 방법을 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그리스도에 대한 정보를 신약에서만 찾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만.. 사실 그리스도에 대한 모습은 구약에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신약은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구약이 제외된 신약에서의 그리스도 이해는 아리송송 모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가 돌아가시는 장면을 묘사만 하고 있을 뿐, 그리스도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그리스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관련된 구약의 본문으로 돌아가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Messianic King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또 다른 하나는 Suffering Servant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두 가지 모습을 좀 살펴보도록 할께요.

I. 시편 2편 9절, 그리스도는 왕이다.

시편 2편을 보도록 하지요. 시편 2편은 왕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가장 대표적인 구절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시편 2편 6절에 보면 왕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요. 그리고 9절에 보면 이 왕이 어떤 모습인지가 살짝 나타납니다. 자신의 원수들에게 철퇴를 가하고 무찌르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자신의 원수들을 무찌르고 이기는 절대적 권세를 가진 왕으로 나타납니다.

이 시편 2편에 나오는 절대적 주권자로서의 왕의 모습은 단지 시편 2편에만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 창세기 3:15절부터 시작해서 창세기 49장, 사무엘하 7장, 시편 2편, 시편 110편, 이사야 9장, 다니엘 7장 14절, 예레미야 23장, 33장 그리고 스가랴 3장, 4장, 6장까지 구약 전체를 타고 쭈~~욱 이어지는 굉장히 큰 라인입니다. 흔히 목사님들이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메시야 사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실 때 당시의 유대인들은 로마에 대항해서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군사적 메시야의 모습을 기대했었다고 말씀들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유대인들의 메시야상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지적들을 하시지요. 하지만 시편 본문에서 보시듯이 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야에 대한 기대치는 지극히 성경적인 것이었습니다. 성경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은 허구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II. 이사야 53장, 그리스도는 고난의 종이었다.

반면에 이사야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 하는 또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사야 53장 7-9절을 읽어보면 앞의 시편 2편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원수들의 손에 붙잡혀서 힘없이 죽어가는.. 원수들에게 지는 것으로 비춰지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이사야 53장은 시편 22편, 시편 96편, 다니엘 9장 25-27절과 서로 일맥 상통하는 또 다른 라인의 구약의 전통을 형성합니다. 특히 다니엘서 9장 26절에 보면 기름부음을 받은 왕의 죽음이 비교적 명확하게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시편 2편을 비롯한 관련 구절들과 정 반대의 이야기가 언급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어찌들 생각 하시나요? 어느쪽이 진짜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시편 2편에 나타나있는 자신을 대적하는 모든 적군들을 무찌르고 승리하는 군대 대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아니면 이사야 53장에 나와있는 것 처럼 자신의 적들에게 잡혀서  죽고 마는 아무런 힘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정답은 이 두 구절중 어느 구절도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두 구절이 합해졌을때 비로서 온전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을 통해 자신의 원수들을 정복하십니다.

III. 그리스도는 자신의 원수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그리스도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물어보아야 할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그리스도를 누가 죽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누가 죽였을까요? 로마 병정들인가요? 아니면 유대인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인가요? 이도 저도 아닌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 11절에서 빌라도가 예수에게 자신의 권위를 이야기를 하자 예수님이 이렇게 답변을 하십니다.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에게는 나를 어찌할 이무런 권한도 없을 것이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에게 넘기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도록 버려두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다시 한 가지 질문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러셨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모습을 이해하는데 키워드가 됩니다. 일단 정답부터 알려드리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하나님의 자신의 원수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비록 원수된 자들이지만 그래도 버리지 못하시고 구원하기를 원하셨기 원하셨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원수들을 정복하셨다는 개념이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입니다만 또 사실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많은 분들이 놓치고 있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개념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원수들에 대한 승리의 연관성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자신의 원수들을 물리력을 사용해서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자신의 원수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물리력으로 원수들을 굴복시켜서 그리스도를 경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베품으로 인해 원수들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꿇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7절에 보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이 땅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닌 구원하기 위해 보내셨다고 분명히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시면서까지 자신의 원수인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셨을까 하는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보통 우리의 원수들은 징벌해서 없애버리려 하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신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또 로마서 5장 8-10절에는 그리스도가 우리와 원수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 분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인가를 정의하고 넘어갈 필요가 생기는데 하나님의 원수, 그리스도의 원수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이야기 하면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죄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죄 문제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쨋든 우리는 죄인이니까.. 우리의 죄 문제가 적절하게 다루어져야 하는데..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피흘림 없이는 죄 사함도 없다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2장 17절 말씀과 패러럴을 이룹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셨지요.

우리의 죄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피를 흘리고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어줄 존재가 필요했는데, 그것을 예수님께서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들에 대한 승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서로 연계되어서 이해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근본적인 목적이 그리스도의 원수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고, 그 구원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필수적이었다는 것이지요. 이 모든 임무를 완수하셨기에 그리스도는 죽으심을 통해 승리하신 것입니다. 원수들과 관련해서는, 구원을 경험한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경배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제는 이사야 53장과 시편 2편의 관계를 한 번 생각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2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원수들에게 철퇴를 가하시고 승리하시는 왕으로 표현이 됩니다. 이 시편 2편에서의 핵심 개념은 그리스도가 왕이라는 것이고 그 왕이 승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에서는 이 왕이 어떻게 승리를 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왕은 세상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힘과 무력으로 자신의 원수들에 대해 승리하신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으로 자신의 원수들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원수들과의 싸움의 무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얼만큼 사랑해느냐? 자신의 목숨을 내어줄 정도로 끝이 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IV. 구약과 본문과의 관계.

오늘 본문 가운데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러한 모습을 반영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어느어느 부분에서 예언된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이고,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 이러한 면에서 왕이시고 이러이러한 면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종이시며 이러 이러한 면에서 구원자이시다.. 이런 식으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묘사함으로 간접적으로 이 모든 부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와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이 붙어있고, 그 팻말이 머리 맡에 세워진채로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십니다.. 시편 2편과 이사야 53장의 theme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시면서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고, 실제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해 우리와 하나님의 화해가 이루어졌음을 본문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Conclusion

이제는 우리가 몇 가지 결론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도 아니고 로마인도 아닌 아버지 하나님이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원수들이 구원을 얻도록 하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원수들을 이기신 우리의 진정한 왕이십니다. 이분이 우리가 닮아가고 따라가야 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요 우리의 군대 대장이 되십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대장으로 삼은 그리스도의 군사들이고요..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그 사랑의 증표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자신의 죽음을 무기로 삼아서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장으로 삼은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군사로 싸울때 우리의 무기 역시 그리스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다른 사람을 논리적으로 이긴다거나, 다른 사람을 힘으로 억누른다거나, 다른 사람을 회유하고 설득해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무기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리가 다른 누군가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첫 걸음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듯이 여러분들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0년 전에 돌아가심으로 인해서 그리스도가 하셔야 할 일을 모두 성취하셨다는 견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신의 원수들의 구원을 위해서이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그 시작입니다. 그리스도의 일은 어쩌면 그리스도의 돌아가심으로 인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것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는 자신의 구원 사역을 계속 하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이 땅 위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은 특정한 agent를 통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agent가 바로 교회이고,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죽는것은 우리가 사랑하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를 통하여 demonstration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죽음으로 인하여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에게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Scripture Reference

Main Scripture : Mark 15:21-39

(막 15:26) 그의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다.

(막 15:27) 그들은 예수와 함께 강도 두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쪽에, 하나는 그의 왼쪽에 달았다. ㉢(28절 없음)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28. 그리하여 '그는 범법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김을 받았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막 15:29)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를 모욕하며 말하였다. "아하! 성전을 허물고 사흘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막 15:30) 자기나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려무나!"

(막 15:31)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함께 그렇게 조롱하면서 말하였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막 15:37) 예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서 숨지셨다.

(막 15:38) (그 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막 15:39) 예수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백부장이, 예수께서 이와 같이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서 말하였다.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큰소리를 지르시고서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서'

(시 2:6)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산에 ㉡'나의 왕'을 세웠다" 하신다. / ㉡또는 '왕을'

(시 2:9) 네가 그들을 ㉢철퇴로 부수며, 질그릇 부수듯이 부술 것이다' 하셨다." / ㉢또는 '철퇴로 다스릴 때에'

(사 53:7)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 53:8)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그가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사 53:9)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 ㉡사해 사본에는 '부자와 함께 들어 갈 묘실을 마련하였다'

(신 21:23) 그러나 당신들은 그 주검을 나무에 매달아 둔 채로 밤을 지내지 말고, 그 날로 묻으십시오. 나무에 달린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준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히9:22)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피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요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 3:17)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요 19:1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에게는 나를 어찌할 아무런 권한도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나를 당신에게 넘겨준 사람의 죄는 더 크다 할 것이오."

(롬 5: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롬 5: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Other References

15:22 : 골고다는 해골이라는 뜻으로 십자가 처형이 이루어지던 일종의 처형장이었습니다. 이 골고다는 예루살렘 성 밖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십자가 : 십자가는 로마에 대항하는 사람들에게 로마에 대항하지 말것을 요구하는 최종의 억제 수단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신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예수님이 로마에 대항하였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15:23 : 몰약을 탄 포도주는 부드럽게 마취를 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아픔을 경감시켜준다.

15:24 제비를 뽑아 옷을 나누어 가짐 : 시편 22:18절의 성취 "나의 겉옷을 원수들이 나누어 가지고, 나의 속옷도 제비를 뽑아서 나누어 가집니다." 시편 22편 전반은 나를 버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15:27 두 강도 : 이사야 53:12의 성취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15:29 성전을 삼일만에 세움 : 14:58

15:30-31 : 시편 22:7-8절의 성취

15:33 어둠 : 아모스 8:9-10(한탄), 출 10:21-23(심판)

15:34 : 시편 22편의 opening. 이사야 59:2, 하박국 1:13(divine abandonment),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사야 53, Heb 5:7-9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시편 22편의 구성과 비슷..

15:35 엘리야를 부름 : 아람어의 하나님(Eli)이 히브리어의 엘리야(Eliyahu)와 비슷해서 사람들이 엘리야를 찾는 줄로 착각함

15:36 신 포도주 : 갈증을 해결시켜서 고통을 연장하려함.

15:38 휘장 : 히브리서 9:2-3, 12, 24; 10:19-20

Posted by yy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