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이야기 할때 우리는 보통 이신칭의를 많이 이야기 합니다. 사도 바울에 의해서 주장되어졌던 전적인 믿음에 의한 구원.. 뭐 이게 틀린말은 아닙니다만, 과연 믿는다는 사실만으로 우리가 구원에 이를 수 있을가요?? 과연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믿음은 무엇이고 성경이 이야기하는 믿음은 무엇이며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걸까요?
우리는 보통 행위는 우리의 구원에 대해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 합니다만 그것은 절대 잘못 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에서 사도 야고보가 기술한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믿음은 무엇인가요? 사도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는 믿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바울이 처해있었던 배경에 대한 지식이 좀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행함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 가운데 이야기 하신 예수님의 법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던 그들의 율법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할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치심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모든 율법들을 다 지켜서 행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특히나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대적하고 있는 행위는 바로 이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율법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피를 흘림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언약과 그 언약을 지탱하기 위해 존재했던 율법과 질서가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새로운 약속이 주어지고 따라서 새로운 율법과 새로운 질서가 이 땅 가운데 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대적했던 "행위"에 대한 개념은 기존의 언약과 그에 따른 율법에 대한 것이지 새로운 언약과 율법이 아닌 것이지요.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이러한 그의 견해에 대해서 도전을 받았기 때문에 사실 진정한 믿음이라고 하는 명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만한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에게 들어오는 그의 사도권과 그의 복음에 대한 도전을 변호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행위가 아닌 믿음에 의한 구원을 외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구원에 대한 믿음의 본질은 바울서신이 아닌 야고보서에서 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위에도 밝혔다시피 믿음은 우리의 행위를 통해서 온전하여 진다고 하는 것이지요. 행위가 없이는 믿는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 분의 질서에 우리가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만큼, 그분이 지키라고 주신 그 분의 법을 우리가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 짓지 않는 삶을 우리가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삼은 베드로 전서 1:14-17절은 그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나타내 주는 여러가지 예 중 하나입니다.
순종하는 자녀로서 여러분은 전에 모르고 좇았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여러분을 불러주신 그 거룩하신 분을 따라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여러분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으니, 여러분은 나그네 삶을 사는 동안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히 이야기 하고 있는바 입니다. 예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던 까닭.. 다름아닌 죄 때문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그들의 삶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보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습니다. 요한 1서 3장 5절
이 말씀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는것과 아울러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삶을 보장해 주신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 하면서 죄 가운데 산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헛되이 여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행위가 밖으로 나타날때에 완성이 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죄가운데서 구원해 주실것을 믿는다면..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예수님께 꿇어 업드려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울부짖으면서 죄와 싸워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분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가운데 보내신 이유입니다.
예수의 보혈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는 죄성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한 성경구절
벧전 1:14-17
순종하는 자녀로서 여러분은 전에 모르고 좇았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여러분을 불러주신 그 거룩하신 분을 따라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여러분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으니, 여러분은 나그네 삶을 사는 동안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히 10:26-29
우리가 진리에 대한 지식을 얻은 뒤에도 짐짓 죄를 짓고 있으면, 속죄의 제사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아 있다고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무서운 심판과 반역자들을 삼킬 맹렬한 불뿐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어긴 사람도 두세 증인의 증언이 있으면 가차없이 사형을 받는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해 준 언약의 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모욕한 사람은, 얼마나 더 무서운 벌을 받아야 하겠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요1 3-10
3:3 그에게 이런 소망을 두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깨끗하신 것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마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그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알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자녀 된 이 여러분, 아무에게도 미혹을 당하지 마십시오.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과 같이 의롭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습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여기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곧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과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
히 4:15-16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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