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주에 예고를 드린대로 패러다임 쉬프트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 난 학기에 Pastoral Counseling이라는 과목을 들었는데.. 별로 실질적인 것 같지도 않고.. 사실 돈만 아깝고 재미도 없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 와중에 한 가지 제가 건진게 있는데.. 인간의 귀성본능이라는 거에요..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생각하기에 normal한 status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대요.. 바로 인간의 이러한 본능 때문에 사실 정신적으로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치유를 받더라도 곧바로 치유 받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되는 거지요.. 따라서 정신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치료과정뿐 아니라 그 사람의 이전 상태가 Normal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건강한 자기 이미지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의 치료가 시작되면서 하나님께서 저한테 계속해서 요구하셨던 것이 바로 이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것을 요구를 하셨거든요.

세상 하나님 나라
어머니 무능력한 아이, 저능아, 멍청이 Image of God
학교 저능아, 학습능력 떨어지는 아이, 불성실한 아이 “회복”
교회 위선자
또래 친구들 같이 놀기 싫은 아이. 울보, 바보
이성 매력 없는 아이.

위의 표와 같이 사실 문제가 많았어요.. 어디를 보아도 탈출구가 없어요.. 그래서 항상 자살을 머릿속에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저에게 긍정적인 사고를 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54명 학급에서 51등 한 애한테 세계적으로 다니는 종이 될 거라고 합니다.

사람 눈을 쳐다보는 게 무섭고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는 사람한테 사랑의 종이 될 거라고 하십니다.

맨날 띨띨하다 저능아다 학습능력 떨어진다 하는 친구한테 영계의 거성이 될 거라고 하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학교 공부를 잘 못 따라갑니다.. 지금 공부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어요.. 그런데 저한테 목회도 해야 한다.. 박사도 해야 한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선교까지 하게 될 거라고 하십니다... 이쪽 동네에 대한 사정을 아시는 분들은요.. 제가 이런 말씀 드리면 미쳤다고 하실 겁니다. 목회 하나를 하려고 해도 평생 노력해야 뭐가 될까 말까 합니다.. 공부를 하려고 해도 그렇고요.. 선교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평생 죽어라 노력해야 겨우 뭔가가 이루어지는 그런 동네에요..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이 세 가지를 다 하라고 하십니다.. 죽겠습니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제시하신 답입니다.. 패러다임을 바꿔라... 세상 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면서 살아라.. 이게 하나님이 제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가능해진대요..

이 와 관련해서 거듭남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한 번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유명한 거듭남에 대한 이야기는 요한복음 3장 3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에 의하면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또 들어갈 수도 없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흠.. 이 거듭남이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의 거듭남에 대해 니고데모가 물어봅니다. 사람이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도 없는데 어떻게 거듭날 수가 있느냐고요..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세례 모티프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요한이 1장에서 이야기 했던 모티프로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자기 뒤에 오실 이는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결국 거듭남이라는 이야기와 세례가 서로 같이 가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례의 의미를 우리가 알게 되면 거듭남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세례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홍해바다 사건과 노아의 홍수 그리고 할례입니다.. 이 세 가지 사건이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데.. 하나하나 설명을 드릴 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갈 것 같고 홍해 바다 사건만 한 번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홍해 바다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 옆으로 갈라진 홍해를 건넙니다.. 물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물 사이를 건너게 되지요. 이 사건을 세례 또는 침례의 모티프로 해석을 하는 것인데.. 세례의 모티프로서의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나안이라는 땅을 우리가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나안이라는 땅이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이냐는 것입니다..

가나안이라 는 땅은 보통 축복으로만 인식을 합니다.. 보통 설교자들이 가나안 땅과 관련된 주제로 설교를 하게 되면 항상 마지막은 같습니다.. 여러분 축복 받으실 겁니다.. 이런 거에요.. 그런데 정말로 그런가요?? 신명기 누구 신명기 31:15-21절 말씀좀 읽어주시겠어요?

31:15 그 때에 주님께서 구름기둥 가운데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기둥은 장막 어귀 위에 머물러 있었다.
31:16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조상과 함께 잠들 것이다. 그러나 이 백성은, 들어가서 살게 될 그 땅의 이방 신들과 더불어 음란한 짓을 할 것이다. 그들은 나를 버리고, 나와 세운 그 언약을 깨뜨릴 것이다.
31:17 그 날에 내가 그들에게 격렬하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고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온갖 재앙과 고통이 덮치는 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재앙이 덮치고 있다' 하고 탄식할 것이다.
31:18 그들이 돌아서서 다른 신을 섬기는 온갖 악한 짓을 할 것이니, 그 날에 내가 틀림없이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기겠다.
31:19 이제 이 노래를 적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부르게 하여라. 이 노래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가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증언할 것이다.
31:20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뒤에, 그들이, 살이 찌도록 배불리 먹으면, 눈을 돌려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업신여기고, 나와 세운 언약을 깨뜨릴 것이다.
31:21 그리하여 그들이 온갖 재앙과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한, 이 노래가 그들을 일깨워 주는 증언이 될 것이다. 비록 내가 아직 약속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기 전이지만, 지금 그들이 품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나는 알고 있다."

이 말씀은요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이 예언되어 있는 구절입니다.. 그 멸망이 어디에서 일어나는 지 아세요??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말씀을 주실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 가나안 땅 구경도 못 해본 때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멸망 당할 것을 이야기 하고 계시는 겁니다... 목사님들이 이 말씀은 쏙 빼 놓고 가나안에 대해 말씀 하십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하면 무조건 축복의 땅으로만 인식이 되고 있어요.. 그런데 보세요.. 멸망의 땅이에요..

이 것을 어찌 받아들여야 합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보여주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시고 마지막에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준다 하셨던 그 땅이 결국 그 자손들의 멸망의 땅이 되어버렸는데.. 이걸 어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말이지요..

거기에 대한 힌트는 히브리서 11:8-10에서 얻을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랬던 곳은 가나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시..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설계 하시고 세우실 곳...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축복이라고 일컬어지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도..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게 하시려고 가나안을 이용하신 것입니다.. 이게 Exodus motif입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인도하시고자 했던 곳은 가나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고요.. 그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곳이 눈에도 안 보이고 설명하기도 어렵고 하니까 가나안이라는 동네를 이용하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그곳이 가나안이 되었든 아니면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이 되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초대한 민족들이 하나님 백성답게 못 사니까 어떻게 됩니까??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것처럼 가나안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다시 홍해의 바다 사건으로 돌아가볼게요.. 이 사건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고자 했던 곳은 그냥 단순한 일개 지역 “가나안”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인 것입니다.. 홍해 바다 사건은 이런 관점에서 굉장히 의미가 깊은데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에 속해있는 이집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례의 진정한 의미는 세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의미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신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압니까? 하나님 나라에서 살려면 뭘 지키고 살아야 하는지 압니까? 아는 게 없어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는 그래도 어른이라고 떵떵 거리면서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해서는 갓 태어난 어린 아이와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를 모르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배워야지요. 알아야지요... 거듭남이라고 하는 표현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우리의 status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표현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지난 주에 말씀 드렸던 하나님의 형상.. 이 내용들이 단박에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제 구실을 할 수 있을 때 까지 긴 시간과 교육이 필요하듯이 하나님 나라 또한 그런 긴 시간의 인내와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교육은 누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이 여러분한테 계속 알려주셔야 하는 내용입니다.. 그 분의 나라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인내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포기하지 마시라고요.. 이렇게 말씀 안 드리면 하나님의 나라가 그냥 일반 설교처럼 쓱 듣고 잊어버리는 그런 주제가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심.. 그리고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개념이 없으면 기독교인으로 살기 힘들어집니다.. 항상 흔들립니다..

여러분들한테 툭 까 놓고 말씀 드리는데.. 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제가 요즘.. 제발 알려달라고.. 알아야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몸부림 치면서 기도하고.. 그러면서 공부를 하는데.. 잘 안 잡혀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전문적으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토록 무지하고 또 답답함을 느끼는데.. 전문적으로 말씀을 연구하지 않는 여러분들은 어떻겠습니까?? 저도 저지만 여러분들을 생각하면 저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분들한테 부탁 드립니다.. 기도 하세요.. 그 나라의 비밀을 보여주시고 알려달라고 기도하시면서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이건 우리가 몰라도 되는 주제가 아닙니다.. 꼭 알아야 하는 겁니다.. 그 나라에 대해서 모르면 그 나라 백성으로 못 삽니다.. 그 답은 하나님만이 알려주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저도 잘 모릅니다만.. 그래도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다음 주 부터는 그 나라를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이 겪는 모든 고통과 괴로움 상처들은 우리가 이 땅.. 세상에 있기 때문에 겪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우리가 거하게 되면 상처와 고통의 근원들이 말라버립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회복이 일어나게 됩니다..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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