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4232314405&code=940202
뉴스를 읽다 보니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에 자살을 한 한 고등학생 뉴스가 나오네요..
그런데 그 학생의 죽음을 본 사람들의 댓글에 눈에 갑니다.. 이 댓글들은 아마도 자살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마음이 따듯해 지는 것은 삶의 끈을 놓을 수 밖에 없었던 17세 소년의 마음에 공감을 해 주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분들도 상당수 있네요... 저마다 재판관이 되어서 죽음을 선택한 17세 소년의 나약함을 질책하고 죽음을 정죄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오셨지요.... 요한복음 3:16-17절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가장 큰 속성도 역사 생명입니다.
목사님이 자주 인용하시는 이사야 42장 3절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리고 에스겔 16장 6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하는 사명도 역시 사람을 살려내는 것인데.. 위의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은 과연 나는, 우리는 사람을 살려내고 있는가 하는 부분을 되물어보게 됩니다.
댓글들을 훑어보니 상당히 많은 분들이 그깟 여자문제로 죽음을 선택을 하느냐는 반응들을 보이십니다.. 인생에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별거 아닌 일로 죽음을 선택을 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죽는 이유는 힘들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죽는 것이지요...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어렵고 힘든 경우들을 맟닥뜨리게 됩니다. 모든 인간들은 그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을 극복해 나가면서 성장해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힘 들고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지대가 필요합니다.. 방법론이 되었든 심리적 안정이 되었든 지지대가 필요하고 이 지지대는 보통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외부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드는 일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지지대를 발견한 사람은 그 지지대를 발판 삼아서 그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버텨냅니다. 하지만 이러하 지지대를 찾아내지 못한 사람은 설령 그 상황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결국 포기하고 맙니다. 이러한 상황이 자기 자신의 자아정체성과 심리적 불안과 겹치면 심한 우울증과 아울러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일로까지 충분히 이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는 여자 친구와의 헤어짐이 이 어린 학생에게는 충분히 자살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은.. 이 기사에 달린 댓글들 중 이 학생이 충분히 자살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분들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군요... 그것은 우리 사회에 누군가 심리적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고려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그 사람의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사람의 자살을 막아줄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반증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이 학생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마도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자살율이 높은 나라인 이유일테지요...
사람이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을 오랜 기간 겪게 되면 우울증과 함께 무기력감이 찾아오게 됩니다.. 우울증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서 이 세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합니다.. 그것이 무기력증과 겹치게 되면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서 무가치한 사람으로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이 한 동안 오래 계속 되어서 스스로가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서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게 되면, 그 다음에는 누구도 그 사람의 자살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주 조그마한 일에도 자살에 대한 충동을 느끼게 되고.. 그 충동을 자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목숨을 끊는 것이지요... 이 학생의 경우 여자 친구와의 헤어짐이 직접적인 이유였다기 보다는 이 학생에게 잠재되어 있었던 스스로에 대한 낮은 평가가 여자 친구와의 헤어짐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분출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의 경우 여자 친구와 헤어지는 사건은 충분히 자살 할 수 있을 정도로 충격과 스트레스를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고 또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또 동시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겠지요.. 이런 친구들한테 자신이 한 잘못한 것들을 정죄하고 너는 왜 그것 밖에 안 되느냐고 충동질을 하는 것은 빨리 자살 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이런 부분을 제대로 의식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드무네요..
2011년 5월달에 KBS의 스포츠 아나운서였던 송지선 아나운서가 자살을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송지선 아나운서가 자살을 하기 약 1주일 전에 트위터를 통해 자살하고 싶다는 암시를 이미 했었더랬습니다.. 당시 그 기사를 보고 "몇 일 안에 송지선 아나운서가 죽겠구나" 생각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 일 되지 않아서 송지선 아나운서가 자살했다는 기사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 17일에 자살한 KAIST 4학년생의 사건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KAIST 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부담은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깊은 패배 의식을,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장래에 대한 불안감과 부담을 주게 됩니다. 이러한 패배의식과 불안들이 적절하게 다루어져서 해소되지 않는다면 자살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KAIST 내부에서 알고 있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남표 총장이 경쟁주의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그 이면의 부분을 알면서도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로 인해 17일 또 한 명의 학생의 자살을 막지 못했습니다. 송 아나운서의 자살 사건과 KAIST 학생들의 자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를 보여주고 있는데.. 현재 우리 사회는 자살 위험성이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위 17세 학생의 자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바로미터 같군요..
이런 이슈들 관련해서는 교회가 좀 바빠져야 하지 않을지..
겔 16: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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