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수 없다... 기독교적 인간론에 있어서 가장 기초이고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인가에 대한 정의이다.. 이.. 쉽고도 어려운 정의.. 이 놈이 이런 저런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기독교적 구원론을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인간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 밖에 있는 외부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그 외적 존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실 것이다... 우리 인간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가 있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독교적 구원론은 신입협동설도 부인한다는 것이다.. 구원은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간의 노력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의 은혜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 정통 기독교의 교리이다.. 구원을 성령님의 도우심 더하기 인간의 노력으로 이해를 하는 신인협동설은 이단으로 이해되고 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의 인간론에 의거할 때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기본적인 인간의 전제에 의거해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구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현세적인 구원과 내세적인 구원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내세적인 구원이 익숙할 것이다.. 죽어서 천당간다는 표현이 바로 이 내세적인 구원을 의미를 하고 있을테니.. 하지만 구원에는 현세적 구원도 있다..

구원은 우리를 억압하고 억누르고 있는 어떠한 상황에서 우리가 빠져 나와서 해방되는 모든 것을 통칭하는 의미이다.. 내세적 구원은 하나님을 배신함으로 인해서 이 땅의 모든 창조물들에게 내려진 창세기 2:17절에 의거한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사망에서 영원한 삶으로 우리가 옮겨지는 것이다.. 현세적 구원도 이러한 의미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이 땅을 살아갈 때 우리를 억누르고 휘어잡는 이 땅의 문제들로부터 우리가 놓임을 받는 것이 바로 현세적 구원일 것이다.. 많은 목사님들이 하시는 표현인.. 우리 삶의 매듭이 풀어지는 것이 바로 현세적 구원이다... 문제는 우리의 삶의 문제의 매듭을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보통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매듭을 풀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여기에서 큰 딜레마가 생기는데.. 기독교적 인간론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이 하는 행동 자체는 절대로 구원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만일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력 구원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력 구원이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미 기독교가 아니다.. 따라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게 되면 우리가 우리의 어려운 처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과 노력들은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구원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오게 된다..

따라서 정말로 기독교가 이야기 하는 구원론과 기독교적 진리 위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상황을 뚫어보겠다는 시도 자체를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이 구원해주실것을 기대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는 이러한 삶이 쉽지가 않다... 결론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구원론과 관련해서 과연 자력구원이 가능하냐.. 또는 신인합동설이 맞느냐를 따지는 신학적 토론의 자리에서는 입에 거품을 물고 그것은 잘못 된 것이라고 반박을 한다.. 하지만.. 삶의 현상에서는 자력구원을 믿으면서 살아간다.. 최소한 신인합동설이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의 구원론이 된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 차라리 솔직하게 나는 자력구원을 믿는다.. 또는 나는 신인합동설을 믿는다고 솔직하게 말을 하지..

그런데 이러한 아이러니가 생기는 이유는 그만큼 성경이 제시하는 대로 산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내 생명을 걸고 가지 않으면 버텨내기가 힘든 삶이다...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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