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뉴스 사이트에 이근안씨 관련 뉴스가 올라왔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04/2012020400533.html

마음이 좀 아프다... 이근안씨가 무슨 일을 했던간에 상관 없이 인간이 저렇게 살아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상당수 많은 분들이 이근안씨의 목사직 박탈을 요구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글쎄.. 그게 과연 올바른 방법이었을까?? 정황상 이해는 가지만 그게 꼭 최선이었을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회의가 좀 있다... 마음이 아프다..

 

이근안씨가 과연 잘 했느냐 또는 잘못 했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견의 여지는 없는 것 같다. 분명히 잘못 한 부분이 있다. 이근안 씨가 자신은 고문은 하지 않고 공갈만 했다고 한단다.. 아마도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이근안씨는 잘못 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근안씨의 잘잘못을 따지는 근거는 이근안씨가 다른 사람을 고문했기 때문에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틀 안에서.. 특히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 이근안씨의 행동을 판단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지 민주주의 틀 안에 갇혀서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이 일은 민주주의적 잣대 또는 인도주의적 잣대로 판단해야 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판단해야 할 일이다.. 이근안씨가 다른 사람을 고문을 했든 아니면 공갈을 했든 이근안씨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사용을 했었던 그 판단의 잣대는 분명히 하나님의 잣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야 할 우리들이 하나님과 다른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했을 때.. 그것이 바로 기독교가 이야기 하는 죄의 특성이다.. 따라서 고문을 하는 과정에서 이근안씨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명백히 죄를 지었고.. 그 죄는 분명히 뉘우쳐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이근안씨 사건에서 사람들은 민주주의적, 민족주의적, 반공주의적, 인도주의적.. 여러 가지 틀 안에서 이근안씨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러한 틀 안에서 이근안씨의 행동을 재단하고 정죄하고 이근안씨의 어떤 행위를 요구한다.. 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절대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근안씨를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라는 틀 안에서 이근안씨를 바라보아야 하고 이근안씨도 기독교의 목사라면 자신을 바라볼 때 이 하나님 나라의 틀 안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이근안씨의 목사직 박탈을 요구했었던 기독교인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이 있다.. 과연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근안씨를 바라보고 그와 같은 요구를 했을지...

 

내가 심각하게 자살을 고민을 할 때, 나를 살려준 말씀은 2가지였다.

하나는 에스겔 16장 6절 말씀이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그 다음은 에스겔 18장 31-32절 말씀이다.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이 두 말씀은 죄를 지은 사람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너무나도 잘 나타나 있는 말씀이다.. 특히 에스겔 18장 말씀은 더욱 그러하다.. 이 외에도 요나서의 말씀이나 벧후 3:9절 등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한결 같이 죄에 빠져서 하나님을 등진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살기를 바라시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하나님게서 보시기에 무엇을 잘 하냐 못 하냐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근안씨와 그의 가족의 지금의 모습을 둘러보면 한국 땅의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이근안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점은 잘못이다.. 그 부분은 이근안씨가 뉘우치고 돌이킬 것을 바래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이근안시가 살아 있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적어도 이대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도록 방치해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목사 직분은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으로는 비록 일개 교단에서 특정 과정을 거치면서 받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직분을 주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이근안씨가 목사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목사직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시고 인도하시고 도우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인간이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는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돌아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이근안씨와 그의 가족이 생계에까지 심각하게 위협을 받을 정도로 몰아부치는 기독교인들의 경우에는.. 우리 자신이 그렇게 몰아부칠 자격이 있는지 역시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특히 하나님이 그러한 행동을 기뻐하실지 말이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그런 행동을 기뻐하실 분이 아니시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선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들 차이는 있을 지언정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누구나 다 죄인이다.. 그것은 이근안씨나 지금 이근안씨를 몰아부치는 다른 기독교인들이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목사들 중에 자신이 온전해서 목사직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모두 다 죄인이고 모두 다 목사 부적격자이다.. 그런 사람들이 목사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의로워서 하나님으로부터 이쁨을 받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단언컨대 단 한 사람도 없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근안씨와 우리가 달라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다 똑같다는 이야기이다..

마 18: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마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마 18: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마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다고 느낀다면 절대로 이근안씨를 그렇게 몰아부쳐서는 안 된다.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게 되면.. 우리 모두가 죄는 짓는 것이다....

 

마음이 괴롭고 아프다.. 지금 이 순간 이근안씨 옆에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기독교인이 있어서 그 분의 삶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존재하기를 소원해본다.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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