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트의 제목은.. 어떻게 붙이는 게 좋을까요.. 삶의 위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혹시 언젠가 M. Div.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설교는 삶으로 준비해라.. 라고요.. ^^; 성경공부와 설교라는 게.. 여기에서 갈리는 것 같아요.. 뭐 제 이해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성경공부는 바른 성경적 이해와 지식만을 전달해 줄 수 있으면 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가 살고 있는 진정한 현실은 무엇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부분을 성경이 이야기 하고 있는 근거에 입각해서 풀어서 설명을 해 주는 것이 성경공부가 있는 장르라고 생각이 되거든요...
그런데 설교는 달라요.. 성경공부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보게 해주고 듣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설교는 그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전달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설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삶의 변화라고 하는데.. 그 변화의 중심에는 바로 성령의 능력이 있지요.. 우리를 변화시키는 그 성령의 능력이 전달되는 통로가 설교라는 것이지요.. 그냥 그렇게 느껴지네요...
따라서 설교와 성경공부는 항상 같이 가야 할 것 같아요.. 성령은 말씀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역사를 하시기 때문에 탄탄한 성경공부의 기초가 없이는 설교시간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제한이 되고.. 또 능력 있는 설교 없이 성경공부 식의 지식만 주입이 된다면 아무런 열매도 없는 Sunday Christian만 양산하는 결과가 되겠지요..
문제는 성령의 능력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하는 부분인데.. 그 대답은 삶인 것 같아요.. 제 삶의 모토가.. 말씀대로 살아보자 에요.. 에스겔 36장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바꾸시고 변화시키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으니 그대로 한 번 따라가 보자는 것이에요.. 이 부분이 하나님께 참 감사한 부분인데..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모토로 살다 보니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것들이.. 많이 보이네요.. 그 중 가장 핵심이 내가 아는 것과 내가 사는 것의 괴리인 듯 해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강조하는 것을 싫어해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아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사실 삶의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이지요.. 여기까지는 이론이에요.. 우리가 지식적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부분이지요.. 여기까지가 성경공부가 우리에게 매릿을 줄 수 있는 영역인 것이지요.. 그런데 실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보려고 하면.. 뭔가가 자꾸 걸려요.. 내 머리와는 상관 없이 내 가슴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지도 믿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을 계속해서 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부터는 단순한 지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치열한 영적 싸움의 영역인 것이지요.. 내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있는지 그 원인들을 파헤쳐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나의 주인으로.. 구주로 모셔 들이기 위해서 싸워야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뒷 부분.. 영적 싸움의 영역에 대한 부분들은 설교하시는 분들이 안 다루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무조건 믿으라고 그러고.. 문제가 생기면 안 믿어서 그런 거라고 핀잔이나 주고 말이죠.. 그런 설교 듣고 있으면.... 사실 설교가 은혜가 넘쳐야 하는데.. 오히려 화가나요.. ^^; 저분이 그 말씀대로 살아보시고 저런 말씀을 하시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말이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걸 어찌하라고... 우리의 힘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다는 게 성경이 증거하는 바인데.. 믿음 자체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인데.. 모든 책임을 마치 교인들에게 전가하는듯한 그런 뉘앙스를 듣고 있노라면.. 흠냐...
성령의 능력은 변화의 능력이에요..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구원론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들어보았다면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변화는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들어서 알고 계실 거에요.. 우리 심령의.. 내면의 변화는 전적으로 성령님의 영역이고.. 따라서 우리가 변화한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고 체험하게 됨을 의미를 해요.. 성령님의 조명하심 아래에서 내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있는지.. 무엇이 내 마음을 붙잡고 내 눈을 멀게 하고 내 귀를 막고 있는지 하나씩 둘씩 드러나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것들이 성령님의 주권적인 개입으로 인해서 깨어져 나가는 것이지요...
설교 단에 설 때는 이렇게 경험한 성령의 능력을 붙들고 올라가야 하는 것이지요.. 설교 단에 올라갈 때는 말씀을 풀어서 해석하기 위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붙들고 올라가서 그 성령의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말씀의 주인 되시고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드러날 때 교인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일어날 때 나를 변화시키셨던 성령의 능력이 교회 안에 충만해져서 우리 공동체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에요..
따라서 설교의 준비는 내 삶에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해요..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우리의 영혼에 생명수가 되시는 성령의 능력을 하루 하루 경험하고 체험할 때 설교 단에 올랐을 때 위대한 성령의 능력이 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보통 설교를 준비할 때 보면 설교 본문을 선정을 하고 그 말씀이 어떤 의미일까 연구해서 그렇게 연구한 결과를 붙들고 올라가게 되죠.. 그런데 저는 이런 설교준비 패턴에 도전을 하고 싶어요.. 설교는 단순히 말씀을 지식적으로 연구해서 올라가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공부하고 연구한 말씀이 실제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까지 충분히 테스트를 해서 삶에서 나온 결과물을 가지고 올라가는 거에요.. 내가 알게 된 말씀을 머리로만 씹는 것이 아니라.. 내 삶으로 씹어서 그렇게 소화된 결과를 가지고 올라가야 한다는 거에요.. 설교를 이런 식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설교 한 편을 준비하기 위해서 적어도 몇 개월의 시간이 필요해요.. 말씀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을 적어도 몇 개월간 내 삶에 적용해 보고.. 내가 이해한 말씀이 삶에서 잘 적용이 되는지.. 뭔가 부족하다면 어디가 부족한지.. 계속 씹고 씹고 씹어서 그 결과를 붙들고 올라가야 한다는 거에요.. 삶 자체가 설교준비의 장이 되어야 하고 말씀 자체가 삶 안에 녹아 들어가야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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