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교회에서 설교를 했어요... 덕분에 어제는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보냈습니다. 페이퍼도 써야 하는데.. 공공공..
그제 설교는 그동안의 제 개인적 설교학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그 동안 설교에 대해서 느껴왔었던 원칙들을 그제 설교에서 다 사용을 했었거든요..
1. 먼저 설교 주제는.. 이미 2년 전에 exegesis가 끝난 본문을 선택을 했었어요.. 그리고 작년 10월달이었나?? 9월달이었나?? 그때부터 줄기차게 기도하면서 삶 가운데 적용시켜보려고 했던 내용이었어요..
설교 내용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이 있어요.. 설교자가 설교단에 올라가서 설교해야 할 내용은 막 exegesis를 마친 결과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다.. exegesis가 끝난 내용을 삶 가운데 적용을 해 보고, 그렇게 적용되어진 결과를 가지고 설교단에 올라가야 한다. 보통 이 부분을 "적용" 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하는데.. 이 "적용"의 영역은 역시 책상 위에 앉아서 이리 저리 머리 굴려서 생각해낸것 가지고 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설교자가 직접 경험해 보아야 한다. 혹 직접 경험을 해 보지 못했다면.. 간접적으로라도 (책이나 기타 다른 매체들) 경험을 해서 설교자의 것으로 소화를 시킨 것들이어야 한다. 그렇게 실제 삶 가운데 적용을 해 보면, 삶에서 적용이 잘 안 되는 이유.. 삶에서 적용을 할 수 없는 이유들이 나온다. 설교자는 그 이유를 때려야 한다...
저는 그저께 설교한 주제를 가지고 적어도 6개월 이상 제 삶에 적용시켜 보았고.. 그것이 제 삶에서 어떤식으로 움직여지는지.. 제가 느껴보았습니다. 그 제 삶의 경험을 가지고 올라갔었지용...
2. 그리고 설교할 때, 설교 시간 자체를 성령님이 알아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완전히 맡겨드리려고 노력 했더랬습니다.
교회에서 찬양 인도를 하면서.. 사실 처음에 찬양을 인도 할 때는 그 시간을 제가 주도적으로 끌고 가려고 많이 시도를 했었더랬어요.. 찬양 인도를 하면서 그 시간에 같이 부를 찬양들의 전체적인 주제를 선정을 하고, 핵심 찬양들을 그 주제에 맞춰서 선택을 하고.. 의도적으로 성도들이 그 주제에 맞춰서 찬양하고 기도하게 만들려고 제가 인위적인 노력을 좀 기울였던 거지요...
그런데.. 그게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안되더군요.. 헤헤.. 그래서 사역을 그만두기 1달쯤 전부터는 바꿨어요.. 찬양 시간 전체를 그냥 성령님한테 맞겨버린거지요. 찬양 시간에 성도들을 제가 임의로 컨트롤하려는 모든 노력들을 배제하고.. 오로지 성도들이 자유롭게 성령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분위기만 만들어 놓은거에요.. 그리고는 저는 그냥 성령님께 기도하는거지요.. 그 시간을 성령님께서 주관하셔서..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서 원하시는대로 붙들어달라고.. 그랬더니.. 전체적으로 기도하는 분위기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마음의 문이 한 명씩 한 명씩 열리더군요.. 그러면서 찬양시간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어요.. 또 성도들도 그 시간이 너무 은혜롭다는 feedbacK이 있었고요..
이 부분을 그저께 설교 시간에도 적용을 했더랬어요.. 설교시간에.. 제가 제 힘의 의지로.. 임의로 성도들의 마음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어요.. 성도들의 마음을 바꾸려는 제 일체의 노력을 완벽하게 배제하려고 했었고, 있는 그대로 말씀이 이야기 하는 것만 성실하게 선포하려고 노력을 했더랬어요.. 저는 그냥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역할만 충실하게 하고, 성도들의 마음 밭은 성령님께서 직접 역사하시도록 완전히 성령님께 내어 맡긴거지요...
그래서.. 사실 그저께 설교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에 우리가 참여하자는 것이었는데.. 설교를 마치고 나서 기도하면서 부를 찬양은 우리의 희생이나 고난등을 강조한 찬양이 아닌.. 예수님을 높여드리는 찬양인 "이 땅위에 오신 하나님의 본체" 와 성도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이라는 두 찬양을 선곡을 했고, 설교가 끝난 후에 기도제목을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하게 해달라는 기도제목을 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령님의 임재하심 안에 머물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이야기를 했었지요..
이 기도의 제목을 주면서 제가 의도했었던 것은 이것이었어요. 성도들이 성령님께 마음의 문을 열어서 성령님과 교감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준 것이지요.. 그리고 성령님이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만지셔서..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에 동참할 수 있는 마음은.. 성령님께서 주관하셔서 성도들에게 주시라고...
뭐.. 설교 한 번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싶기는 한데.. 일단 지난 금요일의 설교는.. 이 모든 것들을 전부 포함시켜서 적용시켜보았던 설교였어요.. 설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글쎄요.. 어쨋든.. 사람의 변화는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것은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거니까.. 성실하게 성령님이 친히 그리고 직접 일하실 수 있도록 사역의 장을 내어드리는건 올바른 시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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