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두 가지를 좀 써보고자 합니다.. 흠.. 계시록 translation 숙제 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네요.. 그런데 이 내용을 정리해 놓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을 거 같네요..
우리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해서 보통 생각이 있는 분들은 하나같이 이렇게들 말씀들을 하십니다.. 성공은 아니라고.. 물질은 아니라고.. 그런데요.. 성공 빼고 물질 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사나요??
그거 보이시나요?? 가끔 강단에서 목사님들이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요.. 그리고 끝이에요.. 성공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면 무엇을 위해 사는 거지요?? 그 대안이 제시가 되어야 하는데.. 그 대인이 제대로 제시가 안 되는 거지요.. 목사님들도 무엇을 대안으로 삼아야 할지를 모르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기껏 우리는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 물질적인 축복을 위해서.. 명예와 세상 부귀영화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셔 놓고는.. 다음주에는 우리가 축복 받으려면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 한다고 설교들을 하시는 거지요.. 그 축복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직접적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결국 다시 세상 부귀영화로 돌아갑니다.. 쩝..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그곳.. 우리 인생의 진정한 목표로 삼아야 할 그곳에 대해서요.. 이 부분이 명확하게 정의가 되고 정리가 되지 않으면요.. 결국 우리가 돌아갈 곳은 이 세상의 부귀영화밖에 없습니다.. 그거 이외에는 대안이 없어요.. 이 부분을 정리하지 않으면요.. 백날 천 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라고 추구해야 할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 명예, 권력.. 이런 거 아니라도 떠들어도.. 이거 밖에 안 보이는 겁니다. 그거밖에 안 보이니까.. 결국은 어떻게 합니까?? 그거 따라 가는 거지요..
우리가 최종적으로 우리의 삶에 목표로 두어야 할 그 곳은요.. 에덴 동산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마련해 놓으시고 만들어 놓으신.. 그곳이 우리가 가야 할 곳입니다. 그 곳이 우리의 본향이에요.. 이 세상의 부귀영화.. 이 세상의 권리, 권세.. 그곳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헤헤.. 이렇게 말씀 드리면.. 굉장히 naive하다고 말씀 하시겠지요? 그런 거 누가 몰라?? 다 아는 이야기 하네.. 뭐.. 이렇게들 말씀들 하실 거 같아요 ^^; 맞습니다. 저는 항상 다 아는 이야기 합니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에덴 동산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천국.. 하늘 나라 하나님 나라라고 이야기 되어지는 곳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그 곳이라는 것은 제 글을 보시는 분들이라면 다 아십니다.. 그런데요.. 그 곳이 어떤 곳인가요?? 그것을 확실하게 아시는 분 혹시 계신가요?? 편의상 에덴 동산이라는 말 대신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대신 사용 하겠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가요?? 헤헤.. 그거 모르시면요.. 여러분 하나님 나라.. 하늘 나라를 간다는 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시는 겁니다.. ^^;
에덴 동산, 하나님 나라는 분명히 낙원입니다. 우리가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지상 낙원이에요.. 그것은 절대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거 부인하면 요상해집니다.. ^^; 아무런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곳..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 (계 21:4) 그런 지상 낙원이 바로 그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곳이 이러한 지상 낙원이라는 사실보다는 그곳이 왜 이런 지상 낙원이냐 하는 부분이 더 중요합니다.. ^^; 이 것을 알아야 하나님의 나라.. 새로운 예루살렘이 보이거든요.. 왜 그럴까요??
처음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인간은 하나님의 공급함에 의지해서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즉 하나님의 공급이 끊어지게 되면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노력을 해야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계속해서 불안과 고통이 찾아 오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그 나라가 우리에게 지상 낙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곳에는 하나님의 온전한 공급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인정되는 곳이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 개념은 어떤 공간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계시록 1:6에 보시면 하나님이 누리를 나라로 불러주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공간적인 개념으로만 이해를 하면 육체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권이 인정되는 곳이라면 어디가 되었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각 개인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이야기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 되시며 우리의 왕 되신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 우리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게 되고 그렇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이 인정이 된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처음 이 땅을 창조하셨을 때 만드셨던 하나님의 섭리가 회복됨을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이 처음에 어떻게 지음을 받았다고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의지해서 살도록 지어졌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회복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공급함에 의지해서 살 수 있는 자격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노력으로 인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함으로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안에 본질적으로 남아있는 ..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덜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쁨으로 살 수가 있게 되는 거지요.. 무엇의 회복이라고요?? 하나님의 공급함에만 의지해서 사는 우리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덴 동산의 실체입니다. 이 것이 바로 요한 계시록 21장의 새 예루살렘의 실체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권세들이 자취를 감추고 하나님의 통치권과 하나님의 섭리만이 온 세상을 다스리는 원칙으로 통용되는 그 곳.. 그 곳이 나무가 우거진 숲이 되었든 광활한 초원이 되었든 황금길이 번쩍거리는 거대한 도성이 되었든.. 공간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이 전적으로 이정이 되느냐.. 하나님의 권세에 반항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영들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광활한 사막.. 풀 한 포기 없고 물 한 방울 없는 곳이라도.. 그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 곳이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라면 그 곳이 바로 에덴 동산이고 새 예루살렘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방법, 어떤 길이 되었든 하나님의 공급이 반드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엎드려 진심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하나님의 위엄과 주권으로 인해 예배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은 나그네길 같은 곳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그 본향을 위해 거쳐가는 중간 길목 같은 곳입니다. 우리의 모든 소망.. 우리의 모든 목적은 우리가 가야 할 그 본향.. 하나님의 영광과 자비와 사랑이 흘러 넘치는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한나님의 나라.. 새 예루살렘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그 곳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화사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으실.. 우리 영혼의 고향.. 그곳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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