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도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헤헤.. 어떻게 된 인간인지.. 저는 요즘 교회들이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아닌거 같이 보여요 ^^; 요즘 교회들이 하고 있는 전도 방법에 대해서 나름대로 이의를 제기하고 전도가 이런 식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하는 것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전도를 이야기 할 때에 보통 마태복음 28장 19-20절 구절을 많이들 사용을 하시면서 Out Reach를 많이들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요.. 과연 전도가 Out Reach일까요??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하실 분들이 계실거 같습니다.. 흠.. 좀 살펴볼께요..
이 부분은 제가 한영신학교 다닐 때 배운 선교학 관련 지식을 좀 사용해볼까 합니다.. 여기 고든콘웰에서도 배우긴 배웠는데.. 아시다시피 그때 새벽예배에 이사에 수업은 하루에 6시간씩.. 게다가 가장 중요한거.. 영어가 안 됐다는 점들이 복합 상황을 만들어서... 수업시간에 무엇을 들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선교의 개념과 역사를 들여다보면 구약과 신약이 확연하게 틀립니다.. 일단 구약에는 특별히 신약과 같은 특출난 전도내지 선교의 개념은 없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전체적인 흐름은 절대로 이방인들을 무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만들기 위해 부르신 아브라함부터 하나님의 약속은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의 씨(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복을 받는 것으로 묘사가 됩니다. 그 복의 근원을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그 복의 근원을 가지고 있는 형태가 됩니다.. 여기에서 나오게 되는 구약에서의 선교 또는 전도의 개념은 이사야 2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 2:2 마지막 때에,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모든 산 가운데서 으뜸가는 산이 될 것이며, 모든 언덕보다 높이 솟을 것이니, 모든 민족이 물밀듯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2:3 백성들이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할 것이다
2:4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즉.. 이스라엘 민족들이 다른 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기 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씨, 구원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특별히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상징하는 시온 산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이방 민족들이 모여드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마태복음 28장 19-20절 말씀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구약에서도 분명히 선교, 또는 전도의 개념이 이처럼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안으로 모여드는 방법으로요..
신약으로 가게 되면.. 마태복음 28장 19-20절 말씀 말고도 예루살렘의 큰 박해 사건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이사야 2장의 말씀처럼 literal하게 예루살렘으로만 모여드니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흩으신 것입니다. 이 대 박해 사건으로 인해서 기독교인들이 세계 각 곳으로 흩어지게 되고 세계 각 곳에 복음이 전파가 되게 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게 구약과 신약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전도 또는 선교의 개념과 패턴입니다..
자 이제부터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신약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에서 이야기 하는 밖으로 나가는 전도를 해야 합니다.. 이 논리가 맞습니까?? 이게 맞다면 제가 이런 이야기를 시작도 안 했겠지요..
제가 볼 때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의 박해로 인하여서 기독교인들이 바깥으로 나가면서 전도가 세상의 전 지역에 걸쳐서 일어난 사건은.. 구약 이사야에 나타난.. 시온 성으로 이방인들이 모여드는 형태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이 두 가지 패턴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서로 떨어뜨릴 수가 없는 패턴입니다..
시온이 무엇인가 개념을 한 번 잡고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면 제가 드리는 말씀을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 현재 우리 교회들이 하고 있는 전도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겠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위치하고 있는 산 이름입니다.. 따라서 시온이라고 하는 이름은 바로 예루살렘 성전을 다른 말로 이야기하는 말이고요.. 예루살렘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도 시온산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지칭하는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시온으로 모여든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 하심이 있는 곳이기 때문인 것이고요.. 시온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왜 시온으로 몰려드는지는 결국 성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아야 알 수 있게 됩니다..
성전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 1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기 전에는 하나님과 아담, 하와가 서로 같은 장소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 만남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서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이 사건이 어떤 사건이냐 하면요..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임재 하심 안에 거할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겠다는 이야기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 임재 하심을 회복하시는 사건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에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나와 함께 거했던 것 처럼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고 선포하신 사건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모세를 통해서 성막을 지으신 사건입니다. 출애굽기 40장 35절에 보면 모세가 성막을 다 지은 후에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성막에 literal하게 거하신다는 겁니다. 그 성막이 이스라엘의 회중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면서 같이 거하시는 사건이고.. 이것은 에덴 동산의 회복, 구원을 의미를 합니다.. 굉장히 놀랍고도 감격스러운 사건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드리기를 원했고 하나님은 그 일을 솔로몬을 통해 받으셨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졌고 그 장소가 바로 예루살렘의 시온 산 위에 세워진 것이지요.. 왕상 8:11절에 보면 성전이 지어지고 난 이후의 일들이 보이는데.. 역시 성전이 지어지고 난 이후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워서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구약에서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던 이유는 그 곳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었기 때문이고.. 그곳에 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의해 성전이 무너지고나서 성전에서의 하나님의 임재 하심은 더 이상 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포로기 이후에 스룹바벨 시절에 성전이 다시 재건되었고.. 신약 시대 헤롯 대왕 시절에는 그 성전이 엄청난 리모델링이 되었습니다만.. 이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 하심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건물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지요..
신약 시대에는 이 성전이 어디에서 나타나냐 하면.. 요한복음 2:19-21절에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예수님의 몸 자체가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왜요?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시는 곳은 어디가 되었든 거기가 성전이었던 셈이지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 하심이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는 이 성전이 어떻게 됩니까?? 바로 우리의 몸이 성전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3:16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우리의 몸이 성전이고 우리의 몸에 성령님이 거하신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성령님은 삼위 일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우리에 거하시고 우리에게 임재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마태복음 28장 19-20절로 다시 한 번 돌아가 보겠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 산의 성전에만 거하셨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성전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세요.. 우리 모두가 걸어 다니는 성전인 셈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러 어디로 찾아오겠습니까?? 우리한테 오겠지요.. 이게 전도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맥락이 보이시나요?? 구약 이사야 2장과 신약 마태복음 28장이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 보이시나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요 이 기능을 따로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Out Reach만 계속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겨나는 문제가 뭐냐 하면요.. 성전이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겠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겠습니까??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입니다.. 점점 거룩해지고 점점 성화되어가는 우리를 보고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스스로가 거룩의 삶을.. 성화의 삶을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게 총동원주일이니 뭐니 하는.. 교회에 사람들 머릿수 채우기입니다...
잘 보세요.. 전도는 교회에 사람들 머릿수 채우는거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오는 이유를 보세요.. 이사야 2장에 사람들이 성전으로 모여드는 이유를 보세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얻기 위해.. 생명의 근원을 알기 위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일상적인 말을 통해서 그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으면.. 우리는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종교집단 하나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전도는 우리가 누군가를 찾아 나가서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애타게 찾고 하나님의 품과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성전으로.. 준비되어진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전도 제대로 하려면요.. 선교 제대로 하려면요.. 우리의 마음에 성전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체크해 봐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에.. 비전이라고 하는 공동체에 같이 몸을 담고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우리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성소로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겁니다.. 제대로 된 복음이.. 제대로 된 생명수가 우리들 안에서 흘러 넘치고 있는지.. 우리들 모두가 진정한 구원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 구원의 기쁨을 맛 보고 있는지.. 복음의 진정한 능력 안에 거하고 있는지.. 그것부터 먼저 점검 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김상일 전도사님을 만나서는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전도사님은 구원 받았느냐고.. 그 구원의 기쁨 안에 있느냐고.. 김선복 전도사님한테는 그 질문을 말을 바꿔서 해 보았습니다.. 전도사님은 살아있느냐고.. 생명을 소유하고 있느냐고.. 이 질문을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살아계시나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피 값으로 여러분들에게 주신 그 생명을 지금 소유하고 계신가요?? 누리고 계신가요?? 삶에 구원으로 인한 기쁨이 있으신가요?? 구원이 무엇인지는 알고 계신가요?? 살아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는 알고 계신가요?? 구원이 왜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인지는 알고 계신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왜 우리를 자유케 하셨는지는 알고 계신가요?? 그것을 알고 계신다면..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피 값으로 사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그 기쁨과 자유를 지금 누리고 계신가요?? 여러분.. 살아있어요?? 지금 성전으로서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으신가요?? 성령님이 정말로 여러분의 주인이 되어서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고 계시나요?? 하루하루 살면서 성령님의 온전하신 인도하심 안에 거하고 계신가요?? 지금도 온갖 근심 걱정 불안 슬픔 분노 공포 등으로 인해서 하루하루 죽어있는 삶을 살고 계시지 않으세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전에 먼저 사세요.. 먼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선포하신 그 나라 안으로 들어가세요.. 여러분 안에서 먼저 영적 부흥을 경험하세요.. 하나님 앞에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면서 나아가세요.. 여러분들이 먼저 살아야 남을 살릴 수가 있어요.. 여러분이 먼저 구원의 기쁨을 소유하고.. 먼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광을 경험을 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가 있어요.. 성전으로서의 기능 회복하세요..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으로의 기능..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인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말씀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사랑의 편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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