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을 보면 타락 이야기가 나옵니다. 타락 참 중요합니다. 여기에서도 역시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은 타락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타락하게 된 동기와 그 이면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차근 차근 짚어볼까요?

먼저 짚고 싶은 것은 타락의 동기입니다.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행위를 하시고 하루를 끝마칠 때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말입니다. 영어 표현으로는 "God saw that it was good" 이렇게 됩니다. 히브리어로 보면 좋았다고 표현한 단어가 중요한데 토브라는 단어가 쓰입니다. 여기서 좋았다고 하는 표현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말로는 좋다는 단어와 선이라는 단어가 뚜렷하게 구분이 되어서 서로 각기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의 good과 히브리어의 토브는 이 단어가 좋다라는 뜻과 선이라는 뜻을 모두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3장 5절에 보면 영어로 "God knows that when you eat of it your eyes will be opened, and you will be like God, knowing good and evil."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선과 악을 하나님처럼 이해한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하다고, 또는 선하지 않다고 하신것을 인간이 뒤집어서 악하다고 또는 선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이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서 설명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1장에서 천지만물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대로" 즉 "선한대로"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게 됨으로 하나님과 다른 관점에서 인간 마음대로 "좋고, 나쁘고"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신 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게 되는 사건이 발생을 합니다.

창세기 2장 25절에 보면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고 되어 있습니다. 이때는 아직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기 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를 벌거벗은채로 창조하셨고 그대로 두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이 좋아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이 선한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것이 좋아보였다고 말씀 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런데 3장 10절을 보면 아담이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저는 벗은 몸인 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보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벗은 몸을 악이라고 하신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보시기에 좋아하셨습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은 하나님이 선하다고 보신것을 악하다고 보고 동산 나무 사이에 자신의 몸을 숨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선하다고 인정하신 것을 악하다고 스스로 단죄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 또는 죄의 속성입니다.

타락, 또는 죄라고 하는 것은 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고유권한을 침범하는 월권 행위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다른 말로 교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와 비슷한 메세지를 주는 성경이 바로 욥기입니다. 욥기에서 욥은 자신의 의를 주장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 합니다. 그런데 욥기 38장을 천천히 읽어보시면 하나님이 욥에게 하시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욥기 38장부터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신 말씀은 창세기 1장과 2장의 내용과 다르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 하시고자 하셨던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욥기 38장부터 하나님께서 질문하시는 것도 질문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결국 욥에게 "내가 창조주이다"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창조주임을 나타내시면서 동시에 "의"와 "악"을 정의하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도 결국 하나님밖에 없음을 욥에게 이야기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욥은 자신의 의롭다거나 자신이 악하다고 이야기 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의롭다거나 악하다고 말 할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욥기의 내용은 창세기 2장과 3장의 재탕입니다

선악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선악과와 관련해서 가장 관심있는 주제는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의 속성을 들여다보면 인간이 죄를 짓게 된 이유가 선악과 때문이 아님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인간의 죄는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지요.. 하지만 그 불순종을 만들게 된 동기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교만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불순종 자체보다 더 큰 동기가 인간의 교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선악과를 만들지 않으셨다면 과연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지 않으셨다고 할지라도 사단이 다른 무언가를 이용해서 인간을 유혹 하셨을 것이고, 인간의 교만이 건드려졌을 때 인간은 다른 방법으로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사단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했던것은 선악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선악과 사건에서 주의하여 보아야 할 점은 하나님이 선악과를 왜 만드셔서 에덴동산에 놓으셨냐가 아니라 인간의 교만입니다.

아울러 한 가지 더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과연 인간의 왕권이 어찌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세상의 중개자로서 세우기 위해 인간에게 주었던 왕권.. 인간이 자신의 임의로 무엇인가를 판단하게 되면서부터 세상과 하나님과의 중개자로서의 인간의 역할을 넘어서 이제부터는 스스로 이 세상의 왕으로 군림하려고 하기 시작 합니다. 세상을 판단할 때에 하나님의 주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으로 판단하기 시작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반 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이 세상의 진정한 왕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단지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위에 드러내 보이도록 선택받은 중개자일 뿐입니다. 이 내용은 앞으로 보게 될 구약 전체에 걸쳐서 반복이 되고 또 신약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크리스챤으로 변해가고 바뀌어가면서 사실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다시 왕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옛날 아담과 이브가 교만함으로 인하여 불순종함으로 이 땅에 들어온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심.. 우리가 이 땅에 왕으로 군림하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해서 인간이 잃는 것들을 한 번 살펴볼까요? 눈에 잘 띄이지는 않지만 제일 먼저 잃게되는것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입니다. 임재라고 하는 단어가 사실 마음에 잘 안 와 닿는 단어인데 영어로는 presence라고 하고 우리나라 말로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쓰게 되면 함께하심, 또는 함께 사심이라고 쓰면 더 좋을거 같습니다. 에덴 동산이 어떤 곳이었냐 하면 하나님이 거하시던 곳이었지요.. 에덴이라는 동산이 상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이 에덴 동산에 하나님도 사셨고 아담과 이브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렵게 꼬아서 하나님의 임재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서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 사건을 보통은 살기 좋은 낙원에서 쫓겨난 것으로만 생각들을 하시는데 사실 그거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아담과 이브를 떠났다는 이야기지요. 이와 비슷한 사건이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시 한 번 재탕이 됩니다. 이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는 사건이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면서 성막을 짓는 사건입니다. 이 성막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었거든요. 신약에 와서는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의 몸이 성전으로 여겨짐에 따라서 직접적인 임재가 가능하게 됩니다만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해당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때 다시 거론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쨋든 중요한것.. 하나님의 임재가 아담을 떠났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바로 사망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바로 이 죽음이 거론이 되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돌려 말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하는.. 그 이야기에 나오는 죽음이 바로 이 죽음입니다. 더 많은 설명까지는 안 해도 될듯 하군요

이후에는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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