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장을 보면 타락 이야기와 아울러서 구원의 서막을 알리는 이야기가 같이 나옵니다. 구원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관점을 한 곳으로 모으기를 원하는데, 보통 이 부분을 읽게 되면 관심을 가지고 보는 부분이 사건입니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고.. 등등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읽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렇게 읽지 마시고 이 글을 쓰고 계시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3장의 타락 사건과 구원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이 성경 전체를 통해 매우 일관성 있게 드러나기 때문이며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글을 시작할 때 여러분한테 말씀 드린게 있습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하나님이라고요. 하나님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또는 우리에게 지켜야 할 규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려주기 위해서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어떠한 부분을 읽든간에 그 부분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에 우리의 촛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렇다고 성경상에 나타나 있는 여러가지 율법들을 무시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율법을 먼저 보게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고 알게되면 율법의 진정한 의미가 보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두 번 세번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이 관점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려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보면서 가장 먼저 우리의 관심을 둬야 할 부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명제는 절대로 어떤 시스템이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부분은 하나님이 어떤분이신지 아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오래참으심과 인자하심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알려주기 위해서 성경이 쓰여진 것이고, 이 사실을 가장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사건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인해 이 땅 가운데 허락하신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사실 인간의 타락이 있고나서 가장 감격적인 구절이 창세기 3장 21절입니다. 아기를 길러보신 분들은 이해 하실겁니다. 자기 아이가 아무리 나쁜짓을 저질럿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를 어찌하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 창세기 3장 21절에서 바로 잘못해서 벌을 받고 있는 사랑하는 자신의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scene은 하나님이 뱀과 아담, 하와에게 각각 선악과를 따 먹고 난 후에 임할 저주를 말씀 하시고 아담과 이브를 에덴 동산에서 내보내시기 전에 하신 일입니다. 아담과 이브에게 가죽 옷을 입혀주신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를 할 수 있을것 같은데 한 가지는 아담과 이브가 느꼈을 수치심을 가려주기 위해서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아담과 이브가 축복의 동산인 에덴에서 떠났을 때를 대비해서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인듯 합니다. 어느쪽이 되었든 하나님의 진정은 아담과 이브를 저주의 땅에 내보내서 죽이려고 하셨던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살아 남을 수 있도록 배려 하셨다는 것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과 이브를 포함한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부분이 바로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자손을 여자의 자손과 원수가 되게 하겠다.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여자의 자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창세기 15절 말씀인데.. 사실 성경 전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 부분을 그냥 놓치고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이 구절을 풀이해보면 여자는 하와를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하와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을 뜻합니다. 너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은 표면상에 보이는 것은 뱀이지만 사실은 사단이지요.

이 말씀에서 또한 여자의 후손과 사단의 싸움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좀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락 이야기는 사단이 아담과 이브를 유혹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든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 싸움은 사단과 인간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사단과 하나님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단도 하나님의 창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단과는 싸움이 불가능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상대로 대적해서 싸울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단과 인간의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 싸움의 유형은 타락 스토리와 같습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인간을 유혹해서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하도록 만듭니다. 사단이 가장 즐겨 건드리는 부분이 바로 인간의 교만한 품성이고 그 교만한 품성을 건드려서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판단에 근거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의 지식과 자기 자신의 판단에 근거해서 계속 무엇인가 하도록 부추깁니다.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결국 인간은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듯이 사단과의 싸움에서 지게되는 것이지요. 정리하자면 사단과의 싸움의 대상은 내가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입니다. 요즘 나오는 공포영화나 전쟁놀이처럼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는 사단과 서로 칼싸움 해서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주변의 여건들이나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뢰하고 내 눈에 보이는 판단의 근거로 일을 처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판단의 근거과 방법에 의해서 삶을 살 게 되면 그것이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어떻게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게 됐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 싸움의 승자에 대해서 한 번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면서도 온전한 하나님의 창조물이 누구였던가요? 아담과 이브였지요. 그와 같은 완벽한 상황과 성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또 누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완벽한 창조물이 사단과의 싸움에서 어찌 되었었나요? 졌습니다. 그러면 그 이후에 태어나게 되는 불완전한 인간들이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의 성품에 대해서는 창세기 6장 5절, 8장 21절 그리고 로마서 3장 10절 이하를 읽어보십시오. 이 세상에 사단을 상대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겠습니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실에 대해 희망을 하나 던져주십니다. 다시 창세기 15장으로 돌아갑니다. 여인의 후손이 발꿈치에 상처를 입긴 하겠지만 결국 사단의 머리를 쳐서 괴멸시킬 것이라는 것이지요. 승리의 소식입니다. 인간의 후손이 결국에는 승리를 잡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희망적이면서도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조금 더 풀어보겠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인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오셨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계실줄로 압니다. 특히 복음서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이 Son of God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Son of God 이라고 이야기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항상 자기 자신을 Son of Man 으로 낮춰서 부르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이 이 땅에 사람의 아들로 오셨음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이 창세기 3장 15절에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바로 그 여인의 후손으로 오셨음을 알리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이지요. 싸움 자체가 인간의 후손과 사단의 싸움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오시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왜 하나님이셔야 했을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온전한 인간인 아담이 사단에게 졌습니다. 순수한 인간과 사단과의 싸움에서는 이미 인간이 사단에게 지고 들어간 싸움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쪽난 싸움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이미 창세기 3장에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신 일이었다는 사실이??

예수님이 하신 일을 brief하게 한 번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셔야만 하셨을까요? 앞 장에서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이 이 땅 가운데 저주가 찾아왔다고 언급을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하나님 임재가 떠난 것이었고 그리고 죽음이었죠. 이 두 가지는 말 그대로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선포된 하나님의 저주였습니다. 우리가 다시 삶을 얻기 위해서는 이 저주가 반드시 해결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 저주를 어찌 해결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저주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저주로부터 자유로워졌음을 선포한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인 것이고요.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리스도가 저주를 받음으로 우리가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갈 3:13)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이 누구신가 생각해 볼까요?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이뻐하셔야 할 이유가 있으셨나요? 막말로 자기 말 안 들은 생물체 그냥 확 쓸어버리고 아담과 이브 다시 창조하시면 될 일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 자신을 이 세상에 내어주면서까지, 이 세상의 모든 저주를 당하시면서까지 구하려고 하실 정도로 아담과 이브가 의미있는 사람이었을까요? 하나님이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까지 하셔야 했을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자신이 지으신 창조물.. 특히 자신의 이미지로 창조한 사람에 대해서 어찌되었던간에 하나님은 애정을 가지고 그 모든 죄악을 굴레에서 해방시켜서 다시금 자신의 품으로 돌이키시기 원하는 하나님의 성품때문에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서는 참 이해하기 힘든 경우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배신한 사람을 다시 끌어모아 자신의 품으로 품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은 연약하고 유한한 우리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들만의 하나님을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은 안 기뻐하실거야.. 우리가 저렇게 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내 치실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3장의 사건은 우리 하나님의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를 내치지 아니하시고 품으시면서 돌아올 수 있도록 배려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복음 이야기.. 특히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사실을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음에는.. 노아의 이야기가 나올지 아브라함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과제가 좀 밀려있어서 일단 개인적으로 과제물 하는 시간을 좀 가질까 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조금 기다리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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