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절대로 피해가서는 안 될, 반드시 우리가 정면으로 대응해야 하는 무엇인가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고난을 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보다는.. 왜 우리에게 고난이 닥치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닥친 고난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을 해야 하겠지요..

고난이 우리에게 닥치는 이유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닌것 같아요.. 상당히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는데 고난은 죄의 결과로 인해 생긴 것이고, 따라서 우리가 고난에 직면하게 되는 때는 항상 죄와의 영적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1. 다윗의 고난

그러면 고난의 여러가지 의미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한 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먼저 다윗의 고난입니다. 이러한 고난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당하게 되는 고난의 경우에요..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릴때에 이미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기로 작정을 하시고 다윗을 이스라엘을 통치하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 여러가지 훈련들 중 가장 중요한 훈련이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이지요. 따라서 다윗은 약 20여년간 계속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아주 고된 고난을 거치게 됩니다. 이 모든 고난의 순간들을 보내고 난 후에는 역대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서 가장 의로운 왕으로 칭송을 받게 되지요..

비슷한 예로 아브라함과 기드온의 예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수 있었던 것은 그에 합당한 과거의 훈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00명만의 군사로 수만의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친 기드온의 경우도 처음부터 300명만을 데리고 미디안 연합군에 쳐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하나님은 기드온을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시키고 성장시켜 왔었고, 그간의 심적 부담과 압박감을 이겨냈을때 비로서 300명만을 이끌고 수만의 미디안 연합군에게 쳐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게 된 것이지요..

이와 같이 고난은 고난을 받는 당사자를 훈련시킬 목적으로 종종 찾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훈련시키고 단련시키시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인 것이지요.

 

2. 바로의 고난

반면 이집트의 바로와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뭐 이 경우는 별 다른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잘못을 했으니까 벌을 받는 것이지요. 우리 크리스챤들은 잘못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훈계의 목적으로 벌을 내리시기도 합니다..

헌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벌과 연단은 종종 같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을 때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는데, 그 벌이 동시에 우리의 훈련과 연단을 위한 고난의 성격을 띄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지요.

 

3. 그리스도의 고난

그리스도의 고난의 경우는 위의 카테고리와는 성격을 완전히 달리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를 지어서 벌을 받으신 적도 없으시고, 또 예수님이 부족하셔서 예수님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이유는 전적으로 타인, 예수님이 구원하시고자 하는 대상을 위해서 받으신 것이지요..

예수님이 우리를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실 것을 요구하실때에는, 바로 이러한 고난으로의 동참을 원하고 계십니다. 즉 나의 잘못으로 인해 받는 고난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받는 고난인 경우이지요.. 이러한 고난의 형태가 궁극적으로 우리 모든 믿는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고난의 모형이 되는듯 합니다.

 

4. 예레미야의 고난

예레미야의 고난도 예수님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왕들로부터 상당히 구박을 많이 받았는데, 그것은 예레미야가 죄를 지어서 그런것도 아니고 또 예레미야서를 쭈욱 읽어보면 예레미야가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연단받는 과정으로 그려진 것도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일을 했고 그 와중에 고난을 겪었으니 분명히 예레미야의 고난의 의미는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와 예수님 사이에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는데, 예수님은 예수님의 고난으로 인한 열매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후에 기독교가 세워졌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지요.. 하지만 예레미야의 경우는 이 부분이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즉 예레미야의 고난이 예레미야 주변의 사람들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는 것이지요.. 언뜻 보기에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큰 흐름을 보면 예레미야의 고난은 분명히 의미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고 예비하게 하는데 있어서 예레미야가 담당했던 부분은 굉장히 큽니다. 하지만 예레미야가 사역했었던 당시에는 예레미야의 고난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예레미야의 고난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데, 우리가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을 위해 받는 고난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해 줍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난들도 아무런 의미 없이 묻히지는 않을겁니다. 하나님이 언젠가는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지요.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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