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있는 외장 하드를 정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뒤적이다 보니 이런 문서자료가 나오는군요.. 아마도 한영신학대학 M. Div. 다닐 때 듣던 수업들 중에서 한 과목의 레포트로 써서 낸 내용인 거 같습니다. 같이 있던 파일들이 다 레포트, 페이퍼 파일들이었거든요... 벌써 3-4년 전에 쓴 글 일텐데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이성이라는 주제와 비슷한 부분이 많네요 ^^;

어떤 식이 되었든 신앙적으로 느끼고 깨달은 부분들은 계속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네요.. 사람이라는 동물이 참 희한한 거 같아요.. 오늘 깨달았으면 그렇게 깨달은 내용이 천년 만년 가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까먹게 되거든요 ^^; 나중에 4-5년 지나서 제가 쓴 글들을 돌아보게 될 때면 아 내가 이런 내용도 썼었구나.. 놀라게 될 날도 있겠죠^^; 오늘 이 글을 보면서 약간 놀랐거든요.. 헤헤

신앙과 이성의 관계

여영환

신앙과 이성 이 둘 사이의 관계는 참 야리꾸리하다. 마치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부부관계와 같다고 할까?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설교를 하실 때 예를 들었던 예화가 하나 생각이 난다. 퀴즈 프로그램이었던 거 같은데 사회자가 남편에게 단어를 하나 주고, 남편은 아내에게서 자신에게 주어진 단어가 나오게 유도하는 게임이었나 보다.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주어진 단어가 나오도록 유도하고 할머니는 그 단어를 맞추는 분위기였다. 할아버지에게 전해진 단어는 “천생연분” 이었다. 할아버지는 무심결에 할머니에게 “우리 사이”라는 힌트를 주었고, 할머니가 대뜸 대답하는 말이 “웬수”였다. 급해진 할아버지가 “아니 그거 말고 네 글자”라고 힌트를 주자 할머니가 “평생 웬수?"하고 되 물어본다. 결국 두 노부부는 답을 맞히지 못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서 신앙과 이성의 관계가 마치 이 두 노부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언뜻 해 본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일까? 바로 믿음 없음이 아닐까? 그럼 믿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신들의 그 동안 배워오고 경험해 온 자신의 이성에 비추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판단 더하기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아닐까? 물론 건강한 이성에 근거하지 않은 개인적인 편견과 아집도 한 몫을 하겠지만, 그러한 아집과 궤변들도 결국 이성이라고 하는 테두리 안에 포함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 된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 중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이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사건이 있다. 개인적으로 무협지를 참 좋아한다. 좋아하는 작가는 김용이 있고,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와 천룡팔부 같은 것들은 참 재미있게 읽었다. 이 무협지를 보면 주인공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물 위를 걸어 다니고, 허공에서 땅 위로 마치 걸어 내려오는 것처럼 내려오는 장면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모두 주인공들이 초인적인 내공을 가지고 아무도 이루지 못한 경지의 무학을 이루어서 자연인들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신인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고 부연을 하고 있다. 무협지를 읽으면서 이런 허무맹랑한 부분들이 나오는 것을 동경하면서 참 많이 즐긴다. 하지만 사람이 실제적으로 이렇게 공중을 날아다닌다거나 물위를 걸어 다닐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물위를 걷는 것은 절대로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고, 무협지는 그냥 허구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이성의 근거인 과학은 절대로 우리가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아울러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은 더더욱 일어날 수 없는 것이고, 홍해가 갈라진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때 당시 홍해에 특별한 자연적 현상으로 인해 갈라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라는 추론이 더 이치에 맞다. 더 나아가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관계를 가지지 않았는데 아이가 잉태된다는 것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이며, 삼위일체의 유일신 개념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성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이다. 뭐 박박 우겨서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은 그 당시에 다 있었던 사실이라고 믿는다 치자. 그러면 성경에서 있었던 그러한 기적들이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성적으로 대답한다면 누구도 여기에 대해서 자신 있게 “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대강 윤곽이 잡힌다. 적어도 우리가 지금껏 배워온 경험과 지식에 근거한 이성과 신앙은 (여기서 신앙은 믿음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거 같다) 서로 한 지붕 식구가 될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은 우리가 뜻 바쳐 몸바쳐 평생을 바쳐서 반드시 박멸해야 할 우리의 최대의 적이냐?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면 이성이 매우 섭섭해 할지도 모른다. 누가복음 14:26절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라는 구절이 있다. 이러한 구절을 만났을 때도 우리 크리스챤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순종의 덕목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아멘으로 화답하고 따른다면 사단이 세상을 보고 “참 보기에 좋았더라. 라고 말할 만한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럴 때는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판단하여 예수님이 왜 저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리고 어떠한 의도로 저런 말씀을 하셨는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이럴 때는 이성과 말씀이 찰떡궁합이다.

이러한 예는 우리 신앙의 패턴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98년에 필리핀으로 신학을 공부하러 갔었다. 갈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한 명 꼬셔서 같이 갔었는데, 이 친구는 믿음에 바탕이 없는 친구였다. 나름대로 신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고민이 많았었던 거 같다. 마침 동네에 있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 녀석이 같이 가자고 해서 갔었다. 가보니 강사님이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 기도원장님이셨는데 자신을 섬기던 집사님 이야기를 한참을 했다. 말씀을 들어보니 칭찬하는 말씀이셨다. 왜 칭찬받아 마땅하냐 하면 남편이 그렇게 구박을 하는데도 꿋꿋하게 주의 종인 자신을 섬기셨다는 것이다. 어떻게 섬겼는지 들어보니 그 집사님이 매일 아침과 저녁을 지어서 자신을 대접하였는데, 자신이 식사할 시간과 그 집사님의 남편이 식사할 시간이 겹치니 그 집사님이 자신의 남편은 돌아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자신을 우선적으로 섬기셨다는 것이다. 집사님의 남편이 집사님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어필을 하다가 안 되니까 심지어 폭력까지 구사를 하였다는데, 그런데도 그 집사님은 끝까지 남편은 아랑곳 하지 않고 주의 종인 자신을 그렇게 열심히 섬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3년이 넘게 그러했다고 한다. 참 상 줘야 할 집사님이었다. 그 여 강사님 입장에서는 말이다. 이제 다시 한 번 믿음의 갈림길에 섰다. 믿음으로 아멘 하고 자신의 남편은 돌아보지 말고 자신이 섬기는 주의 종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식모로 들어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지키면서 뻔뻔스럽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신앙과 이성의 관계에서 이성의 이중성을 살펴보았다. 딱 어울리지 않는가? 먼저 예에서 나왔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와 말이다. 문제는 이성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우리의 판단력(이성)을 어떻게 우리의 신앙생활에 유익하게 사용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 져야 할 듯하다. 신학은 철저하게 우리의 이성에 기반 한다. 물론 신학의 근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의 계시들이겠지만, 여기저기 정리되어있지 않은 계시들을 잘 정리해서 잘 분류하고 구분하고 그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속성을 찾아내는 것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들의 일거리일 것이다. 우리의 이성을 잘 활용하여 더욱 우리의 신앙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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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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