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6월 20일 비전교회에서 나눈 성경공부 타락 편에 딸려오는 부록입니다..

이 자유의지에 대해서는 제가 항상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부분이네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있다고 많이들 생각 하시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니라 정통 칼빈주의 신학이고요..

그리고 웨슬리쪽을 따르는 알미니안주의 신학도 마찬가지로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는 주장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쪽은 펠리기우스쪽 주장이고요.. 펠리기우스쪽은 이미 우리가 이단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유를 설명을 해 드릴께요..

일단 이 이야기는 인간의 타락과 원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는지를 이해 하시려면 제가 설교노트에 올린 6월 20일 금요 성경공부 노트를 읽어보시면 더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이 글은 6월 20일에 제가 비전교회에서 강의한 타락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아무런 막힘이 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온전히 이해를 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의미하는 선과 악이 무엇인지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알고 계시는 지식에 근거해서 선과 악을 판단하고 그 와중에 자유롭게 한 쪽을 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 하는 자유 의지입니다..

반면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알지 못합니다.. 이게 문제인 것이지요.. 혹자는 우리가 성경을 통해.. 말씀을 통해 선과 악을 알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만.. 온전한 것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은 우리의 일상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 다양한 양상과 다양한 일과들을 해석 할 때에 굉장히 다양한 해석방법을 준다는 것도 문제가 될 테고요..

우리가 우리의 생활가운데 어떤 큰 판단을 해야 할 때에 그 판단의 기준은 두 가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는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걸릴 테고요.. 또 한 가지는 이것이 과연 나의 행복을 보장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6월 13일 날 제가 비전교회에서 강의 한 내용을 한 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과 우리의 행복이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지으실 때 6일 동안 온갖 것들을 지으시고 맨 마지막으로 우리 인간을 창조 하셨는데..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고.. 그 안에서 행복과 기쁨 자유를 누리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신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한 행복과 자유를 누리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런 은혜로운 하나님을 온 만물에 알릴 때 하나님께서 저희와 온 만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성경.. 특히 창조섭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 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과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서로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지요.. 어쨋든 이 두 가지의 판단 기준에 따라서 우리는 어떤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선한 것인지를 자유롭게 선택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요..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신 것을 잘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일단 어떤 길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길일까요?? 나름대로 성경적인 기준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성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생각되는 길로 갑니다만.. 그것이 정말로 그럴까요?? 개인의 행복으로 문제가 넘어가게 되면 머리가 더 복잡해집니다. 각자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과 방법이 다 있을 테고 그 길을 추구합니다만.. 우리가 추구하는 그 행복이 과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행복이 맞을까요??

타락 이야기.. 그 중에서도 선악과 이야기가 이러한 부분을 알려주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겨버린 선과 악을 판단해버리는 능력.. 우리는 이것을 이성이라고 부릅니다.. 이 이성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만.. 이 기준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고요.. 그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동떨어진 길을 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초에 말씀하신 선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시고 예비하시는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온전한 지혜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판단 기준 자체가 불명확한 것이고요.. 그러한 상태에서 어떤게 옳고 그른 것인지.. 어떤게 좋고 나쁜 것인지를 판단할 때 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바른 판단이 안 되기 때문에 올바른 결정도 기대 할 수 가 없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유 의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는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렇고요.. 따라서 우리 힘으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쫓아갈 수 있는 힘도 근거도 없는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여전히 자유의지를 이야기 한다면.. 그 분이 이야기 하는 자유의지는 타락으로 우리를 내모는 자유의지밖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순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슨 말씀이던지 간에. 우리가 그 말씀가운데 순종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축복과 행복을 보이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오셨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로 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려워 질까봐 그런 거겠죠?? 헤헤.. 그런데 타락교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우리가 알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가 봐야 무엇인 지 알 수 있겠죠. 지금은 좀 고통스럽고 어렵더라도 따라가 보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활짝 열어서 보여 주실 거라는 거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따라가려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아야 하나님께 이러한 신뢰를 드릴 수가 있겠죠..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복음 17:3절이 너무나도 중요하게 다가 옵니다.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라고 하셨죠 ^^;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이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면서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했다고 하셨던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겠죠.. 하나님을 잘 모르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니까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쪽으로만 가게 됐던 것이고요.. 그 길은 결국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참된 자유를 얻고 싶으시다면.. 참된 행복을 찾고 싶으시거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 순종 하고 싶으시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에 힘 쓰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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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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