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

타락은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타락사건을 제대로 이해를 해야 예수 그리스도가 왜 오셔야 했는지, 예수 그리스도가 무슨 사역을 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우리가 타락했기 때문이지용. 또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는데에도 이 타락 사건이 굉장히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줍니다.


1. 죄란?

타락 사건에 들어가기 앞서서 죄의 정의부터 한 번 내려보고 가야 할거 같아요.. 일단 큰 전제를 하나 내려야 겟군요..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죄와 우리 사회가 이야기 하는 죄는 분명히 다릅니다. 사회에서 이야기 하는 죄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인간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들을 죄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즉 인간의 안녕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성경에서의 죄는 다릅니다. 성경상의 죄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죄입니다. 성경상의 죄의 어원은 out of target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target에서 빗나가는 것이 죄라는 이야기이지요.. 이 target을 조금 더 구체적인 단어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바로 창조섭리가 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때에 각 창조물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목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선은 선, 악은 악이라 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 나쁜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하지요.. 한국어의 context상에서의 선과악,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분명히 구분이 됩니다. 그렇지만 히브리어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서 좋다는 표현을 할 때에 사용된 단어도 טוֹב(토브)이고, 창세기 3장 5절에서 선과 악에서 선을 표현하는데 사용된 단어도 טוֹב(토 브)입니다. 즉 좋은 것과 선한 것을 표현하는 단어가 같다는 이야기이지요.. 이 말은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31절에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는데.. 그게 하나님이 선하다고 인정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선하다고 보신 것이지요.. 성경에서의 악은 따로 특정한 악한 행동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선을 벗어나는 것이 악이 됩니다.

선악과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그것을 만들어놓지 않았으면 인간은 죄를 짓지 않았을 텐데.. 과연 그랬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단이 죄에 빠지게 된 것은 하나님이 하늘나라에 선악과를 만들어 두셔서 사단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말미암아 사단이 죄에 빠지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죄의 기본 속성은 하나님과 같아지기 원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에 빠지게 된 이유는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같아지기를 원해서였던 것이지 선악과를 따 먹는 행위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일 선악과가 없었다면 사단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부정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이 죄가 어떻게 우리에게 오게 되었는지, 죄의 특성은 무엇인지, 죄가 어떻게 우리를 파괴하였는지.. 우리가 왜 죄 가운데서 벗어날 수가 없는지 이런 내용들이 바로 타락의 이야기이며 이 밑에 쭈욱 이어지게 됩니다.


2. 죄가 들어오게 되는 경로

처음에 아담과 이브가 창조된 이후 타락하기 전 까지는 아담과 이브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창조섭리 안에서만 행동을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이브에게 있어서 선과 악을 구분하는 standard가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하나님의 창조섭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뱀의 간교함으로 인하여서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이 타락과 관련해서 일단 가장 중요한 전제는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것이지요.. 창세기 2장 15절부터 17절까지를 보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는 따먹되 선악과는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지요.. 여기에서의 죽음이라는게 모든 문제의 시작이요 발단입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을 질책하는 언어가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curse이고 또 다른 하나는 discipline입니다. curse는 그 사람을 진짜로 죽이려는 것이 목적고 discipline은 그 사람을 살리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의 죽는다는 말씀을 명백하게 curse이고.. 이는 그 것을 먹으면 정말로 죽게된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의 죽음을 이해 할 때 이 말씀을 꼭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저주 하셔서 하나님이 인위적으로 죽이겠다고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때의 이 단어는 오히려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는 결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섭리 밖으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물과 인간을 창조 하실 때에 인간에가 가장 완벽한 조건을 만들어서 창조 하셨습니다. 이러한 환경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모든 것을 공급받아가면 살도록 창조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섭리의 이해이지요..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짓게 되면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창조섭리 밖으로 벗어나 버리게 됩니다. 그랬을 경우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공급을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숨을 위협받게 되는 상황으로 내 몰리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창조의 사역을 마치시고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신 날에는 아담과 이브가 창조가 되었었는데.. 창세기 2장 25절에 보면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 기억해주시고요..

창세기 3장으로 가면 뱀이 하와를 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꼬실 때에 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을거라고 이야기 하고.. 또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거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꼬십니다. 그리고 하와가 그 꼬임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 먹습니다. 그리고 아담도 곧 이어서 먹게되지요.. 죽지 않을거라는 말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말은 반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창세기 3: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사람에게 선과 악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생기기는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선과 악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7절에 보면 두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 창세기 2장 25절, 창세기 1장 31절과 한 번 비교를 해 볼까요?? 2장 2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들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벗은 채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서는 이들이 벗은 몸인 그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좋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을 하자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들이 벗은채로 있는 것이 선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따 먹고나서 이들이 판단을 하기에는 벗고있는 것이 부끄러운것.. 즉 악이라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나뭇잎으로 옷을 해서 입게됩니다. 선과 악을 알기는 알게 되었는데.. 이 선과 악이 하나님의 입장에서의 선과 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 기준에 근거한 선과 악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consequence가 창세기 6장 5-6절 그리고 8장 21절에서 드러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 “주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사람이 원래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고 하시지요.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선과 악을 판단하는 능력이 아담과 하와 이후에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고.. 그 결과 사람은 점점 하나님의 창조섭리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많이 화자되고 있는 자유 의지에 대해 한 번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진정한 자유의지가 있는 사람은 아담과 하와뿐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다 눈이 멀고 귀가 멀어서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알지 못하고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판단력으로만 선과 악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선과 악을 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자유 의지는 악을 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 하는거지요 ^^;


3. 죄의 결과

죄가 들어옴으로 인해서 생기게 된 결과 중에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이 이제는 하나님의 기준에서의 선이 무엇인지, 그리고 악은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서 인간은 가만히 놔 두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일단 자기 나름대로의 주관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실 때 만들어 놓으셨던 창조의 섭리를 인간은 알지 못 하게 되었고 이해하지도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보기에 좋은 쪽으로 행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창조섭리로부터 이탈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이 땅을 지으실 때 우리가 살기에 가장 편하고 안락하고 좋게 만드셨었는데.. 그 법칙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깨어버림에 따라서 인간은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따라서 사망이 이 땅에 들어오게 됩니다. 저주가 선포될 때에 인간에게만 저주가 선포된 것이 아니라 이 땅과 온 우주 만물에도 같이 저주가 선포됩니다. 창세기 3장 17절 말씀입니다.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이유는 인간이 이 땅의 주인이요 왕이기 때문이지요.. 왕이 저주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 왕에게 귀속되어 있는 것들도 같이 저주를 받게 되는 이야기는 구약사에도 많이 나옵니다. 반면에 왕이 복을 받게되면 그 왕에게 귀속되어 있는 것들도 다 같이 복을 받게 되지요.. 이 개념도 한 번 기억해 두시면 앞으로 성경 공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말씀 드린대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섭리로의 복귀입니다.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때의 그 창조섭리를 알아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인간의 힘으로는 그 지식을 알 길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인간은 지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 구원의 길이 영영히 막혀버리게 됩니다.


4. 타락 이후의 인간

타락 인간의 인간을 두 가지 모습으로 설명을 해 드렸었습니다. 이 땅의 왕이자 동시에 하나님과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알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중개자라고요.. 그런데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모습은 사라지고 왕으로서의 모습만 남게 됩니다. 사실 진정한 왕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지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이 진정한 왕이 되기를 바라고 이 땅에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이름을 드러내기를 원하게 되어버립니다. 그 사건의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바벨탑 사건이지요..


5. 그리스도의 오심

이러한 모든 요인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야기지요.. 또한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한 가지 더 중요한 정보를 주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미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는 이유는 이루가 의인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한 명도 없다고 그랬습니다. (롬 3:10) 우리가 하나님께 담대히 설 수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하나님께 서야 하고.. 우리가 서로를 대함에 있어서도 서로가 있는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그러한 모습들을 용납하여야 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부족하다고 해서.. 못 났다고 해서.. 서로 욕하지 맙시다.. 타락한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모습을 아시고 그러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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