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01 제자반 성경공부 하나님 나라 - outline.docx
20100801 제자반 성경공부 하나님 나라 - outline.pdf
20100801 제자반 성경공부 하나님 나라.docx
20100801 제자반 성경공부 하나님 나라.pdf
오디오 파일 받기

Loading the player ...


2010년 8월 1일 제자반 성경공부 특강 – 하나님의 나라

I. "하나님 나라" 라는 주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

오늘도 질문을 하나를 하면서 들어가 봐야 겠네요.. ^^; 여러분들은 크리스챤의 삶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평소에 생각들은 한 번 해 보셨나요? 헤헤 제가 이런 질문들을 좀 좋아합니다.. ^^;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 볼께요.. 크리스챤들은 믿지 않는 사람과 어떤점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포커스를 맞추게 되는 가장 궁극적인 질문의 영역이 바로 이 것이 아닐까 싶어요.. 크리스챤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도 그렇고 목적도 그렇고.. 또 교회에서 전하는 메세지들도 사실 대부분이 바로 이 질문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좀 두리뭉실 하지요.. 크리스챤은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불쑥 물어보면.. 사실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거 아세요?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 그것을 대답하지 못 하면, 여러분들은 매 순간 크리스챤답게 사는 것을 실패하게 됩니다.. ^^; 두리뭉실 어리버리하게 알면 모르는거에요.. ^^; 왜냐하면요.. 두리뭉실하게 알고 있으면 결정적으로 뭔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그 순간에 아무 역할도 하지를 못하게 됩니다..

예 하나 들어볼께요.. 저와 같이 계시던 전도사님이 좀 황당한 경우를 한 번 겪으셨어요. 이 분이 사역처를 알아보면서 차를 구입하려고 하셨는데 가진 돈이 많지 않아서 좀 고민을 하셨었거든요.. 그런데 아는 분을 통해서 메인에 있는 한 소나타 매장에서 좋은 딜을 알아내셨어요.. 2010년 소나타를 13000 불인가에 살 수 있게 된 거에요.. 당장 가지고 있던 8000-9000불 정도는 선 지급하고 나머지는 몇 년에 걸쳐서 할부로 납부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래서 그쪽 딜러의 담당자하고 이야기 마치고 차를 인수하기로 날짜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차를 인수하기로 한 당일날 메인의 소나타 매장 담당 딜러에게 전화를 해서 차가 있는지 확인을 하고.. 차가 있다.. 인수하러 와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장에 갔는데.. 매장쪽에서 오리발을 내미는 겁니다. 자기네들은 그런 계약을 한 적이 없다는거에요.. 그래서 아침에 통화했던 딜러를 찾으니까 그 딜러는 휴가를 가서 매장에 나오지 않았답니다. 불러달라니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기때문에 부를수가 없대요.. 통화라도 하자니까 그것도 허용이 안된답니다.. 그래서 아침에 그 사람과 통화한 전화 기록을 보여주었더니 그제서야 계약 사항은 수긍을 하는데.. 이번에는 그 차가 이미 팔렸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결국 돌아왔어요…

만약에 여러분이 이런 상황을 당했다면 어찌했겠습니까? 보통 사람은 화를 내면서 길길이 뛸겁니다. 저도 처음에 전도사님한테 이 이야기를 듣는데.. 처음에 딱 들었던 생각이 그 매장 폭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매장 직원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다 서로 짜고 그렇게 한 거에요.. 그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든 반응은 해야 할거에요.. 그런데.. 이 순간에 크리스챤으로서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충분히 고민을 하고 생각을 정리 한 후에 반응을 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까요?

요게 문제입니다.. 여유가 없어요.. 아마도 보통은 이런 상황이 되면 내가 크리스챤이라는 사실 자체를 망각해버리고 감정이 인도하는대로 따라 갈거에요… 하물며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크리스챤답게 행동을 하는 것일까를 그 순간에 고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런 순간에는요.. 어리버리 알아서는 도움이 안됩니다...

우리의 삶은 항상 이러한 긴박한 상황의 연속이에요.. 삶 가운데 우리는 항상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말 해야 할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 가운데 서게되는데.. 우리가 크리스챤으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말 해야 할지를 충분히 고민하고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경우는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항상 순간적인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크리스챤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 자체가 어리버리 하게 되면.. 그러면 게임 끝난겁니다.. 크리스챤답게 못 사는거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크리스챤의 삶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답을 좁혀가야 되겠지요 ^^;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에 대한 공부가 왜 필요할까요?? 하나님 나라는요.. 크리스챤의 삶이 어떤 삶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출발선상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살고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더 명확히 보일거에요..

II.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념

자 일단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 나라를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 지에 대해서 먼저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먼저인 것 같아요 ^^;

우리는 지금 보스턴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보스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일까요? 제 질문 가운데 답이 이미 나왔습니다. ^^; 그것은 우리가 보스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스턴은 보스턴만의 삶의 방식.. 즉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스턴에 살고 있기 때문에 보스턴의 문화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보스턴 사람들이 사용하는 영어를 사용을 하고, 보스턴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으로 사고를 하고 대화를 합니다. 보스턴 사람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생활을 하고 또 직장에서 생활을 하고 보스턴 사람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이용을 해서 교회를 옵니다. 보스턴 사람들이 자는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고 메사추세츠 주와 각 시들이 제정한 규칙과 법들에 의거해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만약에 말이지요… 여러분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던 패턴으로 이 곳에서 생활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뭐 언어는 영어를 사용을 한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한국에서 사람을 대하듯이 보스턴에 있는 사람들을 대한다면?? 아마도 부적응아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될겁니다.. ^^;

하나님의 나라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를 합니다.. 기독교인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소속이된 시민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제정한 법을 지키면서 하나님 나라 안에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으로 서로를 대하고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패턴대로 생각을 하고 하나님 나라의 문화에 적응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 안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마치 보스턴에서 한국 사람들이 사고하고 행동 하는 것과 마찬가지 경우가 될 겁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부적응아가 될테고.. 결국 하늘나라의 시민이 아니게 되겠지요.. 하늘나라의 시민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크리스챤이 아니라는 말과 의미가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무늬만 크리스챤이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III. 하나님 나라의 현실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생겨 먹었을까요?? 이 부분이 중요하겠지요.. ^^; 사실 우리가 보스턴에서 아무리 오래 있는다 할지라도 보스턴의 모든 것들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그렇죠?? 하루 하루 보스턴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아가고.. 배워가면서 적응하면서 사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한 번에 다 알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죽을때까지 하나씩 둘씩 배워가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현실을 결정짓는 몇 가지 분명한 부분들은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A. 하나님 나라의 정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한국 기독교가 잘못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일단 그 부분부터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이 부분은 하나님의 나라의 동의어를 한 번 살펴보는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하나님 나라의 동의어로는 천당, 천국, 하늘 나라와 같은 말들이 동의어로 사용이 됩니다. 이 모든 말들이 사실 하나님 나라를 지칭하는데 사용이 되는 말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단어들을 들으면 극락왕생이라는 단어와 약간 일맥상통하면서 우리가 죽고나면 가는 어떤 곳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이 부분은 불교에서 이야기 하는 극락이라고 하는 이미지하고 겹쳐지면서 생긴것 같은데..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은.. 절대로 우리가 죽고나서 가게되는 어떤곳 만을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은 잘못된 myth입니다.. 천국 즉 하나님 나라는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리가 죽고나서 가게될 어떤 곳.. 이 두 현실을 모두 다 포함을 합니다. 그리고 이 두 현실이 각각 다 의미가 있습니다.. 이 것이 기독교에서 이야기 하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일단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잘못된 전통은 이 정도에서 언급을 마치겠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른 정의가 필요할 시점인듯 하군요.. 우리가 죽어서 가게 될 어떤 곳이 아니라면 과연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를 해야 할까.. 뭐 많이들 알고 계시는 것 처럼 하나님 나라의 정의는 “하나님의 통치” 또는 “하나님의 통치권이 인정되는 곳” 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의 통치권 또는 하나님의 통치권이 인정되는 곳이라는 것이 무슨 이야기일까요?? 공부를 하다보면 제 스스로 깜짝 깜짝 놀라곤 합니다.. 공부를 하기 전에는 분명히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하다보면 “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라는 결론이 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 경우도 그런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권..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곳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곳이지..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해?” 라고 반문하실 수 있으실 것 같아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한 번 들어보시고 판단을 해 보세요 ^^;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의미는요 단순히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요 “창조 질서의 회복”에 있습니다.. 이 창조 질서의 회복에 대해서는 제가 질문을 좀 하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창조질서가 무엇이고 창조질서의 회복이 무엇인지.. 교회에서 이미 창조질서의 회복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몇 차례 다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얼마나 이해를 하셨는지는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이 내용이 사실 하나님 나라의 이해에 있어서는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이 명제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하나님 나라도 두리뭉실 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두 명 질문을 통해서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지 확인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창조, 타락, 중생, 구원의 이 큰 틀 안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부분이 창조와 타락 사이입니다.. 즉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난 후에 인간이 타락하기 전까지의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곳이라고 정의를 했을 때 역사상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있었을까요?? 바로 이 땅이 창조된 후에 인류가 타락하기 바로 전까지의 세상입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원 원형입니다.. 그리고 장차 올 ultimate reality로서의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 세상이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땅위에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모든 세력들이 자취를 감추고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창조물들만이 남아서 같이 생활하는 공동체.. 이 것이 하나님 나라의 ultimate reality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공간” 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정말로 역사상 이 땅위에 존재해 있었고, 또 앞으로 아마게돈 싸움이 끝나고 이 땅에 오게 될 그 영원한 공간이 어떠한 모습이었고 또 어떠한 모습이 될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B. 하나님 나라의 현실

1.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공급 받아야 있는 존재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썰을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인정되어야 할 가치이자 명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그냥 무조건 주장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요구하시는데에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tyrant가 아닙니다. 자신의 명예와 권세만을 추구하고 자신의 밑에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공급을 받으면서 살아야 할 존재이기에 그렇습니다.

집에 한 번씩 강아지 키워보셨거나.. 아니면 친구분들이나 친척분들이 강아지 키우는거 보신 적 있으시죠?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배가 고프거나 쉬가 마려우면 누가한테 갑니까? 주인한테 갑니다. 왜 갑니까? 주인이 밥을 주니까 주인한테 가지요.. 하나님과 우리는 바로 이러한 관계에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우리의 공급자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여기에서 공급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순간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공급자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source를 찾아야 되겠지요..

인간이 타락이 가져온 결과는 바로 이 관계가 깨진 것입니다. 인간이 더 이상 하나님을 주인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인간이 하나님을 주인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의 공급을 기대를 안 하게 되었고.. 결국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열심히 뭔가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2. 인간과 일의 관계

우리 일에 대해서 한 번 생각을 좀 해 보지요.. 여러분들은 일을 왜 하십니까? 요즘 사회가 계속해서 자기 개발과 경쟁력을 강조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왜 강조됩니까? 조금 더 괜찮은 직장을 잡아서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하려고 그렇게 하는 거겠지요. 그런데 이 땅에 창조사건이 있고난 후에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기 전에도 아담과 이브는 일을 했을까요? 아니면 탱자 탱자 놀고 먹었을까요?? 재미있는 질문이지 않습니까?

여기에 대한 힌트는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얻을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라고 되어 있고요, 창세기 2장 15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 동산에 데려다 놓고 동산을 돌보게 하셨다는 부분이 나옵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도 인간은 일을 했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을 해 보아야 할 질문이 하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요 No work, no pay 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보수도 없는거지요.. 우리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보수를 벌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하나님도 아담에게 그런것을 원하셨을까요? “아담아 에덴에서 열심히 일 하면 내가 너한테 먹을 것을 줄 것이고 에덴에서 열심히 일 하지 않으면 너는 국물도 없다..” 이러셨을까요?

제가 아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해 죽게 하시고 결국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과 창세기 2장에서 아담이 하는 일은 아담의 생존권, 즉 먹고 사는 문제하고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는 것이지요.. 아담은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창조 목적은 무엇일까요?

3. 인간의 창조 목적

오늘 주제가 좀 어렵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는 많이 어렵게 느끼실 분도 많으실 것 같은데.. 그런데 몰라도 되는 내용들은 없습니다. 계속 따라와 주세요 ^^;

인간의 창조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해가 됩니다. 여기에서 형상에 쓰인 히브리어 단어가 젤렘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가 뒤에 가면 우상을 나타낼때도 같이 쓰입니다. 십계명중 첫 번째 게명을 보면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아울러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이 우상이라는 것은 다른 신의 우상 뿐 아니라 하나님의 우상까지도 포함합니다. 왜 하나님 자신도 만들지 못하게 했을까요?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신상을 이미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신상은 나무나 돌처럼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움직이기도 하고 말도 하고 때로는 화도 내고 때로는 울기도 하는 그런 신상이에요..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우상은 그 신을 대표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특정 신에게 제사를 드리거나 기도를 드리거나 할때는 그 신의 모양을 본따서 만들어 놓은 우상 앞에 가서 절을 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지요..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놓은 하나님의 신상도 하나님을 대표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신상을 이 땅 위에 만들어놓으신 이유이기도 하고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이 땅에 창조하신 목적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고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되는 거지요..

인간의 창조 목적과 관련해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인간을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눕니다. 왕,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 모두 다 창조물들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것들입니다. 왕이라는 개념은 창세기 1장 26-28절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다른 피조물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개념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것처럼 다른 피조물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듯이 오히려 다른 피조물들을 섬기고 돌보아서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어떠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신지 간접적으로 다른 피조물들에게 알리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는 선지자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나 명령들을 전달하고 다른 피조물들이 지키게 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과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서 서로 대화하고 관게하고 알아가도록 시스템이 짜여져 있다는 것이지요..

이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형입니다.. 오늘 주제가 “크리스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또 시간적 제한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서도 특별히 인간의 모습에 촞점을 맞추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지금 말씀드린 모습이 하나님 나라의 원형입니다.. 우리가 처음 창조 되었을 때 이런 모습으로 살았었고, 또 앞으로 장차 올 ultimate reality로서의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IV Not Yet but Already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 하면서 많이들 입에 올리는 성격 또는 특징이 바로 Not Yet but Already 입니다. 이 말이 어떠한 의미일까요??

인간이 창조된 목적은 말씀 드린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신상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표하는 대표물로서 지음을 받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또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을 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면서 인간은 한 가지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더이상 인간 존재의 근원을 하나님에게서 찾지 아니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일을 했는데… 타락함으로 인해서 인간이 하는 일의 의미가 변질됩니다. 이제는 본인이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지요.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게 되면서 상당히 많은 부조리가 나타납니다.. 툭 까놓고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먹고 살기 쉬우세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는 것은 이 창조 원형으로서의 하나님 나라가 다시 회복됨을 의미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심을 다시 고백하고, 하나님과 우리가 공급자와 공급 받는자로서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창조 목적 그대로 다시 살게 됨을 의미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하나님께서 이 땅의 통치권을 빼았겼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누구에게도 통치권을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다시 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입장에서 한 표현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을수도 의지할수도 없는 처지에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창조 목적대로 살 수가 없었겠지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그분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다시 하나님께서 처음에 지으셨던 그 창조의 목적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 하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하는 표현의 의미입니다.

그런데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임하지 않았으면서 동시에 이미 임했다는 표현을 사용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의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들은 항상 문화적인 충격 속에서 살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교회는 우리의 삶의 원천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의지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사회는 너희들이 먹고 사는건 너희들의 힘으로 벌어먹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교회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대하듯이 사랑과 관심으로 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사회를 바라보면요, 일단 내 입에 풀칠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 여유가 없는 것이지요..

삶의 목적 자체가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만 사회는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서 삽니다. 우리는 이 두 문화적 공간 안에서 끼어 살고 있어요..

Not Yet의 의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공급을 받으면서 창조시에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사는 공동체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Already는 그 창조시의 섭리대로 살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졌고 그러한 삶이 지금 요구되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지요..

V. 결론

마지막으로 한 번 정리를 해 볼께요.. 크리스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던 그 때 당시의 모습을 원형으로 합니다. 그 원형중에 우리가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고 동시에 공급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창조된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을 대표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벌어먹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과 삶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고 알리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의 이러한 가치를 거부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이 세상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것 같습니다.. 이 상황은 보스턴 땅에서 살면서 한국에서 살던 문화적 패턴을 가지고 사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이 땅에 거주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이러한 문화적 갈등은 크리스챤들이 Not Yet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평생 살면서 가지고 가야 할 크리스챤들의 숙명입니다. 이 것은 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앞으로 장차 올 Ultimate Reality로서의 그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우리와 같이 살게 될 것이고, 그때에 가서는 이러한 갈등도 문제도 없이 영원히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면서 기쁨으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이 예수 믿는게 얼마냐 쉽냐고.. 말씀하신 분이 계셨는데..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건성 건성 믿을것이 아니라면 예수 믿는 것은 힘듭니다. 각오를 하고 가야 할 길입니다.

Posted by yy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