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이제는 구원 이야기로 들어가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타락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이 타락 이야기가 우리의 helpless situation을 너무나도 잘 설명을 해 주고 따라서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닌 외부로 부터의 도움의 필요성을 지적해 준다는데 있습니다. 이 외부로 부터의 도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고요.. 오늘은 창세기 3:15절을 중심으로 이 구원이 어떻게 우리에게 오게 되는지를 살펴볼까 합니다.

그에 앞서서 한 가지 죄와 죽음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지난주에 죄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죽음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자신을 대적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말씀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처인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서 벗어남으로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 구원론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야 할 거 같습니다. 지난주에는 하나님을 너무 무자비하고 사랑이 없으신 하나님으로 여겨질까봐 죄에 대한 consequence에 강조점을 두기는 했습니다만.. 불순종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고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경멸이 될 수 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왕권을 부인하고 하나님 자리에 올라서 앉고자 했던 행위였으니까요.. 이렇게 하나님을 경멸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것은 분명히 죽어야 할 죄임이 분명하고요.. 따라서 죄 사함이 필요한 일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피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죄는 하나님을 능멸하고 경멸한 죄로 그러한 죄는 반드시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죄가 어떻게 사함을 받을 수 있고 또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그 안으로 우리가 들어갈 수 있을지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자손을 여자의 자손과 원수가 되게 하겠다.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여자의 자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1. 하나님과 사단의 관계

지난주에 선과 악에 대해 말씀을 드릴 때 기독교에서는 이원론(dualism)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즉 선한 어떤 것과 악한 어떤 것이 있어서 서로 싸움을 해서 선한 쪽이 우세할 때는 선한일이 일어나고 악한 쪽이 우세할 때는 악한 일이 일어나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 땅의 창조주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진정한 신입니다. 그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는 선한 세계이고.. 그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벗어나는 것이 악이라는 것입니다..

사단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를 합니다. 오늘의 주요 본문인 창세기 3장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단을 일방적으로 저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사단도 하나님의 권세와 권위 아래 복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이야기이지요..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해서 하나님과 싸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기에 대해 적절하게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성경이 욥기서입니다. 욥기 1장과 2장을 읽어보면 사단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잠깐 여기서 사단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듯 합니다. 성경에서 사탄을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하는지요 ^^; 사단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성경 구절이 바로 창세기와 욥기인듯 합니다. 창세기에 나타나 있는 사단의 특징은 계시록 12:9절에 나타나 있는대로 세상을 미혹하는 자입니다. 진실을 살짝 왜곡해서 이야기를 하고는 그 왜곡된 것이 마치 진실인것처럼 떠들어대는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방해를 놓습니다. 또 한 가지 사단의 대표적인 모습이 욥기에서 나타나듯이 accuser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고발자라고 해야 하나요?? 조금이라도 잘못하는 모습이 있거나 잘못할 모습이 보이면 그 사실을 하나님께 고발해서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나게 만들려고 하고.. 또 우리에게도 계속 마음에 우리가 지은 죄를 생각이 나게 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또 한 가지 주의 할 점은 성경은 사단을 공중 권세를 잡은 자로 묘사를 합니다. 욥기에서도 보면 사단이 욥의 몸에 욕창이 돋게 하고 욥의 아들들과 딸들을 죽게 만들고 욥의 모든 재산들을 쓸어가는 등 영적 권세를 이용해서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단이 아무런 힘이 없이 그저 우리한테 거짓말만 해대는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이 세상의 권세를 잡고 힘으로 압박하면서 거짓말로 꾀어내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단이 하는 주요 역할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인만큼.. 우리의 영적싸움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별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 자체가 우리의 사단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고래고래 소리치며 기도하고.. 귀신 쫓는 그런 것들이 영적 싸움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이라고 손무가 그랬지요 ^^; 이러한 사단의 정체를 알아야 사단과 싸울수가 있겠지요 ^^;


2. 우리와 사단과의 관계

하나님은 사단의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히려 사단이 복종하고 순종해야 할 대상인거지요.. 그러면 사단은 누구하고 싸우나요?? 사단은 인간과 싸웁니다.. 이게 우리와 사단과의 관계입니다. “너의 자손을 여자의 자손과 원수가 되게 하겠다.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여자의 자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여자는 하와를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요.. 여자의 자손은 하와로부터 태어나게 될 인류를 의미를 하게 됩니다. 사단의 적수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하와의 자손들인 우리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사단과 인류가 싸워서 인류가 이길 수 있나요?? 일단 인류 중에서 가장 온전한 인류가 누구였는지 따지게 되면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이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었죠.. 사단의 기만과 미혹에 넘어갔던 것입니다. 그럼 역사상 우리 인류중에 가장 온전했던 아담과 하와도 이기지 못했던 사단을 우리 인류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인류와 사단과의 싸움을 선포를 하셨으니 인류와 사단과의 싸움인데 인류의 힘으로는 사단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 하나님 스스로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태어나셔서 우리 인류를 위해.. 인류를 대신 해서 사단과 싸우신 것입니다. 외형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사람과 사단과의 싸움이지만 본질상으로는 하나님과 사단이 대적한 것이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승리가 보장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조직 신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온전한 인간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깊은 속 뜻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어야 했었던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더 자세한 부분들은 아마도 차차 다루게 될듯 합니다.


3.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대해서 살펴볼 때가 된 듯 하군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이야기 되는지 한 번 보도록 하지요 ^^;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를 깨고 사단을 완전히 패퇴시키셨다고 이야기 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도 한 번 돌아보고요 ^^;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는 모두 저주를 받은 자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롬 5:18-19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뭐 여러 가지가 더 있겠지만 제가 이해하고 있는 사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 두 가지 사역이 위의 두 구절에 의해 드러납니다. 갈라디아서 구절부터 한 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피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라고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을 하셨는데.. 이 죽음이라는 것이 죄로 인하여 찾아 온 것이고 그 죄를 씻고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야 할 다른 대속물이 필요합니다. 그 대속물의 조건에 대해서는 레위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사실 우리가 죽어야 하는 건데.. 우리를 대신해서 누군가가 피를 흘리면서 죽어준다면 하나님께서 그 피로 인해 우리가 우리의 죄 값을 치룬 것으로 인정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창 세기 2장 17절의 저주는 하나님에 의해서 내려진 저주입니다. 그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저주를 번복해야 하는데.. 그 저주를 번복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자신밖에는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그 대속물로 소, 양, 염소, 비둘기를 드렸습니다만.. 온전하지가 않았지요.. 소, 양, 염소, 비둘기들이 물론 가치있는 재산이기는 했지만 인간처럼 가치있는 것은 일단 아니었고.. 하나님의 저주를 풀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대속물을 우리를 위해 주셔서 우리가 살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 대속물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스스로가 십자가의 저주를 받아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선언하신 창세기 2장 17절의 저주를 스스로 푸셨고..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창세기 3장 5절에서 아담이 지었던 죄들과 레위기, 신명기등에 나타나 있는 율법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이 온전히 살 길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지성소로 들어가는 성막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사건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이 지으신 창조물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신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 관점인 순종이라는 관점입니다. 위의 피를 흘린 사건은 창세기 2장 17절에서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를 풀기 위한 사건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사단의 궤계와 권세를 허물어뜨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으신 사건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순종 자체가 왜 사단의 권세를 허물어뜨리는 일이 되었는지는 위에 사단의 정체와 더불어 사단이 하는 일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단이 하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만들어서 순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 자체가 벌써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구절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4장의 예수님께서 사단에게 시험받으시는 장면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구성에 대해서 잠깐 간략히 말씀을 드리자면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책이고 신약은 그 예언의 성취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은 절대로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중심은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대해 예언한 것들을 성취하시고 이루어 나가시는것이 가장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마 26:56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이렇게 되게 하신 것은, 예언자들의 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복음서에 보면 위와 같은 구절들을 굉장히 많은 곳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이 예언서에 나와 있는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 했다고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에게 있어서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것들을 다 성취하시고 이루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었고.. 이 순종이라는 명제는 사단과의 영적 전쟁의 수단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돌아가시기 전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신 모든 일들 가운데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사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셨다는 것을 표현 하신 것이지요.. (요 19:30)

마 26:53-54 “너희는, 내가 나의 아버지께, 당장에 열두 군단 이상의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 주시기를 청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고 한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라고 말씀 하신 예수님의 표현은 굉장히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바리새인과 대 제사장쪽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잡으러 왔을 때 그 사람들을 예수님의 하나님으로서의 영적 권세로 처리할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일부러 자신의 하나님으로서의 권세를 포기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길을 선택 하셨습니다.


4.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배신하고 배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여전히 우리를 아끼시며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사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본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돌아가시도록 하셔야 할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사실 하나님께서 잘못하신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 인간을 존중해 주어서 우리에게 선택권을 부여 하셨고.. 그 선택권을 잘 못 사용해서 인간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갔었던 것이니.. 하나님이 꼭 인간의 행복을 책임져야 할 상황은 아니었지 않을까요?? 자신에 대해 반역하고 불순종한 인간들 싹 쓸어버리고 다른 창조물을 창조를 하셔도 됐던 일이고.. 그런데 구지 그런 방법들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인류를 남기기 원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셔서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서 저주를 받으시고 돌아가심은.. 이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하신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 하나님에 대해 감사함으로 반응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5. 마태복음 6:33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이 말씀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려야 하겠네요.. 보통 이 말씀을 해석 할 때에 전도를 많이들 염두에 두고 밖에 나가서 전도하라는 의미로들 많이 받아들이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워낙에 전도 oriented 된 기독교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말씀은 빌립보서 2장 12절의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 안으로 들어가서 살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 인하여서 사단의 권세를 깨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창세기 2장 17절의 우리에게 내려진 저주를 푸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한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시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우리를 초청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계시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됨으로 인하여서 사단으로부터의 권역에서 탈출하여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이 된 것이고 그로인하여 우리에게 구원이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단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살면서 우리는 여전히 사단과 전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평생 계속 기도하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마태복음 6장 19절부터 그 이하의 환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전략인 것이고.. 거기에 대해 굴복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말씀이 6장 33절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몇 몇 부분들을 살펴 보았습니다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약간 살펴본 것 뿐입니다. 아직 갈 길 멀었고요 ^^; 실제로 내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힘입어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지..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은 아직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길이 열렸다는 것만 알려드렸을 뿐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이야기가 될 겁니다..

Posted by yy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