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지난 시간 이야기 했던 것을 요약하자면 우리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선이라 인정하신 것을 우리도 선이라고 인정하고 따라 가야 하는데 그런데 우리 힘으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말씀을 드렸고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이 선이라 말씀하신 것을 선이라고 인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우리가 기쁨으로 따라갈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셔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거였습니다. 아울러서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율법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하지요.. 이 율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지난 시간에 이야기 했던 믿음의 의미가 더욱 명확해지고 특히 믿음에 의한 구원이 왜 의미가 있는지가 더욱 자명해 질 것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 제가 율법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아서 자세히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대략만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이 율법은 왜 주셨을까?

먼저 하나님께서 율법을 왜 주셨고 율법을 통해서 원하신 것이 무엇이었는지 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또 다시 창조, 타락, 구원 섭리로 올라가야 하는데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만드신 것은 교제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교제하면서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면서 서로 간에 기쁨을 얻는 것이지요.. 그러한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선이라 하신 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 인간에게 최적의 조건으로 창조를 하셨고,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그러한 섭리 안에 거할 때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삶이 보장이 되기 때문이지요.. 우리 인간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에 의존하면서 살 때 진정한 하나님을 만나고 보게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하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관계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신 것과 악하다고 하신 것을 임의대로 판단하기 시작 하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이러한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통로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공급함인데.. 그 공급을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화 내실만 하죠??

율법은 이러한 관계의 회복을 의미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무엇을 선하다 하시는지, 무엇을 악하다 하시는지 알 수 있는 근거가 업어져 버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이 내가 생각하기에 선한 것이고 이것이 내가 생각 하기에 악한 것이란다.” 하면서 알려주신 것이지요.. 지금까지 깨어져 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다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 바로 율법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이지요..

이 율법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곳이 레위기와 신명기 20장을 전후한 중간 부분입니다.

2. 사도 바울과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대립

그런데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께서 당신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선물로 준 이 율법을 예수님께서 폐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엡 2: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의 변화를 이야기를 합니다.

히 7:12 제사직분에 변화가 생기면, 율법에도 반드시 변화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을 살짝 고치고 변경한다는 의미의 이야기를 합니다만.. 사도 바울은 표현이 조금 과격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가 됩니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이렇게 따져보면 사도바울은 여러 가지로 당시의 이단아였던거 같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야고보와 서로 대치되더니.. 오늘은 예수님과 완전히 대치됩니다. 특히 예수님은 본인 입으로 당신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하시는데.. 사도바울은 그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히 무시하고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셨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거든요.. 물론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이렇게 완벽하게 서로 반대가 되는 말씀이 성경에 쓰여 있겠지요.. 한 번 사도 바울이 어떤 배경에서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셨다고 말씀 하셨는지 알아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정말로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바울이 이야기가 서로 대치되는 이야기인지도 살펴보고요..

롬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 2:23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왜 율법을 어겨서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까?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롬 8: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율법에 대해서 이해할 때는 항상 사도바울이 로마서 2:23절에서 했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에서 선언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 선언에 근거해서 율법을 바라보아야 왜 사도바울이 로마서 2:15절에서 예수님이 율법을 폐했다고 이야기를 했는지를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3. 구약 시대 율법의 일반

이 제는 구약시대의 율법을 약간 설명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유대인들이 보통 율법이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면 성경의 처음 5권인 모세 5경을 이야기를 합니다. 이 모세 5경에는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말씀하신 매우 다양하면서도 많은 계명들이 존재합니다. 이것들을 유대인들은 율법이라고 불렀으며 그 율법들을 지키기 위해서 많이들 노력을 했었지요.. 구약이 총 39권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이 39권 중에서 율법이라고 불리우는 계명들은 앞에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렇게 다섯 권 안에만 있습니다. 그 나머지 34권의 책들인 이 율법들이 이스라엘 역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어떻게 지켜야 할지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구약시대 율법의 특성을 이야기하는 신학용어로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가 Mosaic Covenant(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언약) 또는 Deuteronomic Covenant (신명기에 그 내용이 잘 나타나 있는 언약)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출 19:5-6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신 28:1-2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주의 깊게 지키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세상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당신들에게 찾아와서 당신들을 따를 것입니다.

신 28:15 "그러나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또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한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온갖 저주가 당신들에게 닥쳐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의 특징을 한 가지 짚어보면.. 조건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부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한 번 다시 돌이켜볼까요??

창 12:1-3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창 13:14-17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내가 너의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누구든지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의 자손을 셀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니, 너는 가서, 길이로도 걸어 보고, 너비로도 걸어 보아라."

창 17:4-7 "나는 너와 언약을 세우고 약속한다. 너는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니, 이제부터는 너의 이름이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너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오고, 너에게서 왕들도 나올 것이다. 내가 너와 세우는 언약은, 나와 너 사이에 맺는 것일 뿐 아니라, 너의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도 대대로 세우는 영원한 언약이다. 이 언약을 따라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될 뿐만 아니라, 뒤에 오는 너의 자손의 하나님도 될 것이다.

창 17:19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아이를 낳거든,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여라. 내가 그와 언약을 세울 것이니, 그 언약은, 그의 뒤에 오는 자손에게도,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창 21:12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들과 그 어머니인 여종의 일로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이삭에게서 태어나는 사람이 너의 씨가 될 것이니, 사라가 너에게 말한 대로 다 들어 주어라.

아브라함의 약속을 보면 조건 절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고 하는 부분이 없는거지요.. 다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하시겠다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조건 절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대로 지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하시면서 복을 주실 것이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조건 절이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보장하지 않으셨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지켜야 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약속과 비교해 보세요.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그런 조건 절이 없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책임지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따를 수 있도록 인도하시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킬 수 있었던가요? 밑에 나오는 본문 말씀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신 31:16-2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조상과 함께 잠들 것이다. 그러나 이 백성은, 들어가서 살게 될 그 땅의 이방 신들과 더불어 음란한 짓을 할 것이다. 그들은 나를 버리고, 나와 세운 그 언약을 깨뜨릴 것이다. 그 날에 내가 그들에게 격렬하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고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온갖 재앙과 고통이 덮치는 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재앙이 덮치고 있다' 하고 탄식할 것이다. 그들이 돌아서서 다른 신을 섬기는 온갖 악한 짓을 할 것이니, 그 날에 내가 틀림없이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기겠다. 이제 이 노래를 적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부르게 하여라. 이 노래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가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증언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뒤에, 그들이, 살이 찌도록 배불리 먹으면, 눈을 돌려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업신여기고, 나와 세운 언약을 깨뜨릴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온갖 재앙과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한, 이 노래가 그들을 일깨워 주는 증언이 될 것이다. 비록 내가 아직 약속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기 전이지만, 지금 그들이 품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나는 알고 있다."

롬 2:23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왜 율법을 어겨서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까?

신명기 31장의 배경을 설명해 드립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계명을 받고 1년간 시내산에서 머뭅니다. 그 1년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명들을 지키도록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리고난 후에 가나안 쪽으로 진군하지요.. 그런데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이스라엘 민족들은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서 가나안땅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지요.. 그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태도에 격노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40년간을 생활하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가나안을 들어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아니한 모든 사람들을 광야에서 다 죽게 하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이스라엘 민족들이 다시금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하기 전에 모세가 새로운 세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과 아울러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들을 다시 선포를 합니다. 지금은 딱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기껏 그렇게 인도하시고는 하나님이 지금 그러시는 겁니다. 이 백성들이 결국은 나를 배신할 것이라고..

잠깐 브리프하게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게 된 이유들에 대해서 짚어드릴께요 ^^; 알아 두시는게 도움이 좀 되겠지요.. 솔로몬 왕 이후로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뉩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라가 나뉜 이유는 솔로몬이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부러 나누어 놓으신 거고요.. 그런데 이렇게 나뉠 때 일어났던 사건이 북 이스라엘의 멸망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어서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이 나뉜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그랬던건데요.. 솔로몬이 참 지혜로운 왕으로 성전도 건축하고 좋은 왕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한테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거 같습니다. 특히 성전을 건축하는 동안 성전 건축 비용을 대느라고 이스라엘 민족한테 세금을 꽤 많이 거두었던 거 같습니다. 솔로몬 왕이 죽고나서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제위에 오르자 남쪽의 유다와 베냐민을 제외한 북쪽의 10개 지파가 르호보암에게 찾아옵니다. 원래 유다와 다른 지파들은 다윗 시절부터 서로간에 앙금이 있었습니다. 다윗과 사울의 싸움 때문에 그런 것인데 다른 지파들은 사울을 밀었고 유다는 다윗을 밀었습니다. 베냐민은 지리적인 여건이 유다의 밑에 있었기 때문에 유다쪽에 힘을 실어줬던거 같고요.. 그런데 다윗이 사울쪽을 힘으로 제압하면서 유다와 북쪽 10개 지파와는 정치적인 앙금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호남지방과 경상도 지방의 지역감정을 생각 하시면 될테고요.. 어쨌든 북쪽 10개 지파가 르호보암을 찾아와서 르호보암의 아버지였던 솔로몬이 무겁게 거두어 들였던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부탁을 합니다. 그렇게 해 주면 르호보암을 따르겠다고 하지요.. 이 제안을 르호보암이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북쪽의 10개 지파가 통일 이스라엘 제국에서 떨어져 나가고 르호보암은 결국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을 다스리게 됩니다. 북쪽의 10개 지파는 당시 군대 장관이었던 여로보암을 세워서 왕으로 삼습니다. 이게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이스라엘 제국이 찢어지게 된 정치적인 이유이고요..

그런데 여로보암이 국가가 분리된 후에 보니 큰 문제가 하나가 있었습니다. 신명기서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반드시 성전에서만 제사를 드리도록 제사 장소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었고.. 예루살렘은 유다지파가 있는 땅에 있었지요. 따라서 북 이스라엘 민족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 유다로 내려가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게 여로보암한테는 여간 정치적 부담이 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자신들의 백성들의 마음이 다시 유다로 내려갈 판이니 그런 상황을 막아야 했지요. 따라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남쪽 지방인 벧엘과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인 단에다 제단을 만듭니다. 그 제단에 출애굽기 32장에 등장했었던 금 송아지 상을 만들어서 그 금 송아지 상에 제사를 드리도록 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이해가 갑니다만, 이 부분은 결국 두고 두고 북 이스라엘의 발목을 잡는 사건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 이외에 다른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였던 계명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고요.. 결국 이 문제와 Social justice 문제가 겹쳐서 이스라엘은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을 선포한 선지자는 호세아 선지자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고 있을 때 사역했던 선지자인데 호세아 선지자와 아모스 선지자등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말씀 하셨던 것은 Social justice가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호세아 선지자의 아이들 이름을 통해서 암시가 되는데 호세아 선지자가 세 명의 아이를 가집니다. 이 아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데.. 첫째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입니다. 이스르엘은 북 이스라엘의 지명 이름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했던 정치 지도자들이 죽임을 당한 곳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했던 이스라엘의 멸망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지요. 두 번째 아이는 딸이었는데 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No mercy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더 이상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는 의미이고요. 마지막 아이는 아들인데 이름을 로암미라 지으라 하십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Not my people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을 더 이상은 나의 백성으로 인정하시지 않으시겠다는 이야기이고요.. 결국 호세아 선지자 사후 30년만인 B.C. 722년에 앗시리아에 의해서 북 이스라엘은 멸망을 맞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그 국가가 지속되는 200여년간 한 번도 하나님께 제대로 제사를 드린적이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도 제대로 지킨적이 없는 것이지요..

남 유다의 경우는 므낫세 왕의 통치 시절에 하나님께서 유다를 버리십니다.

왕하 21:2-9 므낫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역겨운 풍속을 따랐다.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바알을 섬기는 제단을 쌓았으며, 이스라엘 왕 아합이 한 것처럼, 아세라 목상도 만들었다. 그는 또 하늘의 별을 숭배하고 섬겼다. 또 그는, 주님께서 일찍이 "내가 예루살렘 안에 나의 이름을 두겠다" 하고 말씀하신 주님의 성전 안에도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었다. 주님의 성전 안팎 두 뜰에도 하늘의 별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아들들을 불살라 바치는 일도 하고,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게도 하고, 마술사를 시켜 마법을 부리게도 하고, 악령과 귀신을 불러내어 물어 보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많이 하여, 주님께서 진노하시게 하였다. 그는 자신이 손수 새겨 만든 아세라 목상을 성전 안에 세웠다. 그러나 이 성전은, 일찍이 주님께서 이 성전을 두고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말씀하실 때에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선택한 이 성전과, 이 예루살렘 안에 영원토록 내 이름을 두겠다. 그리고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계명과 내 종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한 율법을 성실히 지키기만 하면, 이스라엘이 다시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준 이 땅을 떠나서 방황하지 않게 하겠다" 하고 말씀하신 그 곳이다. 그러나 그 백성들은 이 말씀에 복종하지 않았다. 오히려 므낫세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면전에서 멸망시키신 그 이방 민족들보다 더 악한 일을 하도록 백성을 인도하였다.

남쪽 유다의 경우에는 북쪽의 이스라엘보다는 조금 낳은 형편에 있었습니다. 최소한 성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는 조건은 되었거든요. 실제로 남쪽 유다에서는 여호람, 히스기야, 요시야같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심으로 섬기는 왕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하스, 므낫세와 같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왕들도 있었고 결국 보시는 바와 같이 므낫세의 잘못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은 남쪽 유다를 버리십니다. 므낫세가 잘못한 것은 굉장히 명백합니다. 어찌보면 무서울 수도 있는 일인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안에다 우상을 만듭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왕들 중에서 하나님이 실제로 거하시는 성전 안에 우상을 들여놓은 왕은 므낫세와 아하스밖에 없습니다. 거기다 자신의 어린 아이들을 우상 숭배의 제물로 바칩니다. 지방 곳곳에 우상을 숭배할 수 있는 산당을 세우고 백성들이 절하도록 한 것은 애교로 봐줘야 할 상황이지요..

왕하 21:11-16 "유다의 므낫세 왕이 이러한 역겨운 풍속을 따라, 그 옛날 아모리 사람이 한 것보다 더 악한 일을 하고, 우상을 만들어, 유다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잘못 인도하였으므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보내겠다. 이 재앙의 소식을 듣는 사람은 누구나 가슴이 내려앉을 것이다.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 궁을 달아 본 추를 사용하여, 예루살렘을 심판하겠다. 사람이 접시를 닦아 엎어 놓는 것처럼, 내가 예루살렘을 말끔히 닦아 내겠다. 내가 내 소유인, 내 백성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을 모두 내버리겠고, 그들을 원수의 손에 넘겨 주겠다. 그러면 그들이 원수들의 먹이가 될 것이고, 그 모든 원수에게 겁탈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내가 보기에 악한 일을 하였고,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조상 때로부터 오늘까지,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므낫세는, 유다로 하여금 나 주가 보기에 악한 일을 하도록 잘못 인도하는 죄를 지었으며, 죄 없는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예루살렘이 이 끝에서부터 저 끝에 이르기까지, 죽은 이들의 피로 흠뻑 젖어 있다."
왕하 23:26 그러나 주님께서는 유다에게 쏟으시려던 그 불타는 진노를 거두어들이시지는 않으셨다. 므낫세가 주님을 너무나도 격노하시게 하였기 때문이다.
왕하 24:3 이것은, 므낫세가 지은 그 죄 때문에 그들을 주님 앞에서 내쫓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유다에게서 성취된 일이었다.

하나님을 너무 격노케 하였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은 므낫세의 죄로 인해서 남 유다에 멸망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한 번 선포하신 하나님은 저주는 되돌려지지 않았습니다. 요시야 왕의 선정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이 선포하신 멸망은 60여년 뒤로 미루어집니다. 그러나 결국 남 유다도 자신의 형제 이스라엘처럼 B.C. 586년 바벨론으로부터 멸망을 당하기에 이르릅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31장에서 모세에게 말씀 하셨던 것들이 실제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두 나라의 멸망의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상숭배였습니다.

창 3:22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보아라, 이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따서 먹고, 끝없이 살게 하여서는 안 된다."
창 3:7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창 6:5-6 주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

창 8:21 주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롬 3:10-12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다시 한 번 타락교리 그 중에서도 원죄의 영향에 대해서 remind를 시켜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신명기 31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게.. 왜 저렇게 될 수 밖에 없는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이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에서 사도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자력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미약하고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을 해 볼까요? 사도바울은 바리세인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가말리엘의 제자였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지요. 가말리엘은 바리새파의 파벌중 하나였던 당시 힐렐이라고 하는 파벌의 매우 저명한 신학자였습니다. 그 밑에서 지도를 받는 사도바울도 철저히 바리새인으로 교육을 받았더랬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purity for the law and zeal for their tradition이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는 순수하게 지키려 했었고, 이스라엘의 또는 자신들의 전통에 대해서도 지켜내려고 무지 노력했었던 집단이 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율법과 전통을 중요시하면서 지키려고 했었던 이유는 그러한 그들의 노력으로 인하여서 이스라엘에 메시야가 오게 될 것이고 그 메시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믿음은 전혀 근거 없는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러한 믿음을 가지게 된 이유는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히는 오늘은 이야기를 하기가 적당하지 않을거 같습니다.. 어쨌든 바울은 이러한 바리새인 중에서도 굉장이 유능하면서도 유망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토록 믿고 의지했었던 율법에 의한 구원에 대한 교리가 깨어져 버린 것입니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율법이라면 율법이 왜 필요하고 하나님께서 율법을 왜 주셨는지에 대한 대답을 제시를 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고, 그 상황이 제법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러한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바로 로마서 2:15인 것입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

4. 바울이 이야기한 율법의 존재의 이유

이제는 하나님이 율법을 왜 주셨는지 좀 따져봐야 할 거 같습니다. 신명기 31장에 의하면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이 손수 선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이 결국 구원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려서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될거라고 말이지요.. 그러니까 바울이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롬 4:13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그들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구원은 율법으로 인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러면 율법이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요?? 거기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롬 3:19-20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롬 9:31-32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믿음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한 것이 아니라, 행위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갈 3:19 그러면 율법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율법은 약속을 받으신 그 후손이 오실 때까지 범죄들 때문에 덧붙여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개자의 손으로 제정되었습니다.

갈 3:23-24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개인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율법을 지키게 하심으로 구원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죄가 무엇인지.. 우리가 왜 죄인인지 알게 하시기 위해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게 되는데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지.. 예수 그리스도가 왜 오셔야 했는지.. 이 것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율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가지 명확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내용인데 바울이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에 의한 구원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율법이 가치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유리가 율법을 지킬 힘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앞에 살펴본 구약의 역사가 그러한 바울의 이야기를 뒷받침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하여서 생기게 되는 사건은 율법을 지킬 힘이 없는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원리를 이해시키고 설명시키기 위해서 율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자손을 여자의 자손과 원수가 되게 하겠다.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여자의 자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 땅의 구원은 여자의 후손이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 오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가 처음 타락 하자마자 제시한 구원의 방법입니다. 그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사단의 권세를 허물어뜨림으로 인해서 구원이 성취가 되는 것이지요. 율법이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자신의 죄도 몰랐었고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helpless situation을 인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도우심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지요.

5. 사도 바울이 이야기한 율법의 폐하심과 예수님이 이야기 하신 율법의 완성

사실 사도바울은 두 가지를 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엡 2: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롬 3:31 그러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율법을 폐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재미있지요? 같은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데 내용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로마서 2:15절에서는 율법을 폐하셨다고 하셨는데.. 에베소서 3:31절에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이야기하는 율법과 밑에서 이야기하는 율법..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야기하는 율법의 특성을 이해를 하고나면 이 문제가 풀리게 됩니다.

신 28:15 "그러나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또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한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온갖 저주가 당신들에게 닥쳐올 것입니다.

롬 8: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말씀을 서로 비교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두 가지가 이야기 하는 상황 자체는 서로 같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하나님 말씀 가운데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 두 가지 상황에서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경우에는 저주를 말씀 하십니다. 하지만 로마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정죄가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차이점이 눈에 보이시나요? 사도 바울은 지금 이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1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고 이야기 한 근거는 지금 이 차이점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바울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거지요.

겔 36:24-28 내가 너희를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 데리고 나아오며, 그 여러 나라에서 너희를 모아다가, 너희의 나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맑은 물을 뿌려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 너희의 온갖 더러움과 너희가 우상들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며,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 그 때에는 내가 너희 조상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살아서,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지난 시간에 했던 말씀인데 다시 재탕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하여서 구약 시대와 지금 시대에는 서로 다른 차이가 하나가 생기는데 바로 에스겔 36:24-28절 말씀이 성취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이 조건을 걸고 이스라엘을 축복하셨는데.. 이제는 이 조건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조건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그 조건 없는 구원이 우리에게 선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지키도록 내버려 두셨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로 인하여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킬 수 있도록 보장하시겠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이삭을 바칠 정도의 믿음을 가지도록 책임지시고 이끄신 것과 같은 아브라함에게 베푸신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과거 율법의 철폐는 바로 이 점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조건적인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상황으로의 변화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이야기 하고 있는 율법의 완성과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은 구약에서 주어졌던 율법은 인간이 자력으로 지켜야 했기 때문에 지킬 수 없는 율법이었던 반면 신약에서는 성령님의 사역하심으로 말미암아 지켜질 수 있는 율법으로 바뀜으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는 변화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서로 굉장히 다르게 보이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6.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율법 이야기를 하고 나면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예수님과 다른 것 처럼 느껴집니다. 율법주의.. 잘못하면 반드시 벌주시고 잘 하면 상주시고.. 벌주실땐 무자비한 그러한 하나님으로 나타나는데.. 구약의 하나님이 신약에서 예수님을 보내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학자들이 이야기 하기로는 구약의 율법에는 알고 지은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룰은 없다고 합니다. 알고 죄를 지은 사람은 무조건 하나님의 심판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알고도 죄를 지은 사람들은 과연 용서를 받지 못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몇 가지 볼께요..

출 20:3-5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출 22:20 주 밖의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

우상을 섬기게 되면 그 사람은 무조건 죽이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이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명령이 있고난 이후 32장에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경배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명백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있으면서 지은 죄입니다. 율법대로라면 모세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모든 민족들이 죽음을 당했어야 했을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을 쓸어버리고 모세에게서 새로운 민족을 만들어내겠다고 말씀 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마음을 돌리셔서 레위 지파들로 하여금 무작위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도록 하시는 선에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십니다. 그때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3천명 정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꼭 율법대로 집행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한 번 보겠습니다.

33:10-17 주님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으므로, 앗시리아 왕의 군대 지휘관들을 시켜, 유다를 치게 하시니,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아 쇠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어갔다. 므낫세는 고통을 당하여 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그는 조상의 하나님 앞에서 아주 겸손해졌다. 그가 주님께 기도하니, 주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고, 그 간구하는 것을 들어 주셔서, 그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다시 왕이 되어 다스리게 하셨다. 그제서야 므낫세는 주님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므낫세는 '다윗 성' 밖, '기혼 샘' 서쪽 골짜기의 한 지점에서 '물고기 문'에 이르기까지, 외곽 성을 쌓아 오벨을 감싸고, 그 성벽 높이를 한껏 올려 쌓았다. 그는 또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에 군대 지휘관들을 배치하였다. 그는 또 성전 안에 있는 이방 신상들과, 그가 가져다 놓은 목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산에다 만들어 놓은 이교의 제단과, 예루살렘 곳곳에 만들어 놓은 이교의 제단을, 모두 성 밖으로 가져다 버렸다. 그는, 주님의 제단을 다시 고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제단 위에서 드렸다. 그는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록 백성이 여전히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기는 하였으나, 그 제사는 오직 주 그들의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었다.

므낫세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출애굽기 22:20절에 의하면 므낫세는 반드시 죽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므낫세가 나중에 하나님께 회개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므낫세의 기도를 또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다시 유다로 보내서 왕이 되게 하십니다.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지요.. 그렇지만 이 분이 우리가 믿는 구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한 가지만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출 20:14 간음하지 못한다.

출 20:10 남자가 다른 남자의 아내 곧 자기의 이웃집 아내와 간통하면, 간음한 두 남녀는 함께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간음을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율법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그런데 다윗의 이야기를 한 번 기억을 해 보지요. 다윗의 군대장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다윗이 한 눈에 뿅 가버립니다. 그리고는 밧세바와 간음을 합니다. 밧세바가 그 일로 인하여 아기를 가지게 되자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서 우리야를 일부러 전쟁터의 최 전방으로 보내서 죽게 합니다. 그리고는 밧세바를 취하지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입니다만 율법에서는 이런 경우 그 사람은 반드시 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찌 하셨습니까??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의 이러한 잘못을 꾸짖을 때 다윗이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그 회개를 들으시고는 율법을 적용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적용시키십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부터 이미 사랑의 하나님이셨고 자비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것 처럼 철저하게 율법주의적인 분이 아니셨다는 이야기지요.. 율법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또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바른 길을 보이시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유도하시고 도와주시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므낫세와 다윗에게 율법을 있는 그대로 적용하시지 않으신 하나님의 이유입니다. 율법으로 인하여서 우리의 죄와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알게 하시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자복하고 회개하게 하시는 것이며 그렇게 하나님께 회개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를 그 자리에서 탕감하여 주시며 우리를 다시 사랑을 품어주시고 받아주시는 것이지요. 구약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직접 사랑을 통해 당신의 율법을 완성 하셨습니다.

요 13:34-35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입니다. 금송아지, 다윗, 므낫세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아실겁니다. 구약의 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그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아실 겁니다. 이제는 요한복음 13:34-35절 말씀을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떤건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어떻게 사랑하여야 할지.. 아마도 이해가 가실겁니다..

롬 13:8-10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마 22:36-40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중요합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신 6:5),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레 19:18)' 한 것이다.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 있다."

우리는 신앙 공동체 안에 있는 것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런 가감 없이 공동체의 다른 지체들에게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율법이 율법주의 적으로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율법이 우리와 같이 생활하는 다른 지체를 판단하고 그 지체들의 잘잘못을 따지는 쪽으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알고 있는 대로, 내가 이해하고 있는 대로 지체가 알지 못하고 살지 못한다고 닦달하고 복달하는 경우가 없었으면 합니다. 그 지체의 약한 모습, 아직 부족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 교제하면서 하나님이 그 지체를 바꿔나가실때까지 믿음으로, 사랑으로 품어주면서 기도하면서 기다려줄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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