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이스라엘이 이해 했었던 메시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메시아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는 성경의 구절들이 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오는 왕의 모습으로 메시아를 묘사하고 있고, 그 메시아가 할 일은 주로 자신의 적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물리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보았는데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이러한 메시아.. 강력한 힘과 능력을 갖춘 군사적 지도자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은 크게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진정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자신을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이러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묘사를 합니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마 17: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마 20: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마 27: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막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9: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막 10: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눅 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눅 18: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눅 24: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눅 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위에 나열된 부분이 예수님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고 묘사한 부분입니다. 성경은 메시아를 주로 강력한 군사적 지도자로 묘사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과연 구약은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약 성경이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이는 것에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약이 메시아의 죽음에 대해서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면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요..

 

구약에 나타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관련해서는 그 처음 시작점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시작을 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명의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구약에 근거해서 설명을 하십니다.

눅 24: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 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따라서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 부활과 관련해서는 예수님이 구약이 그러한 부분을 예언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들어가게 됩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엠마오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설명하신 내용을 우리는 모른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엠마오 제자들에게 구약을 어떻게 풀어서 설명하셨는지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이 부분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입니다.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가장 대표적인 구절이 이사야 52:13-53:12 입니다. 그 중에서도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이 관련된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 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사 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위의 구절이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구절입니다..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다는 부분이 메시아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고, 그가 씨를 보게되며 그의 날이 길 것이라는 부분이 메시아의 부활을 예견하고 있는 부분에 해당합니다...

이 내용들을 이해함에 있어서는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이 내용은 고난을 받는 종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여기에 나타나는 고난 받는 종을 메시아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설령 메시아로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9절과 10절을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로 이해를 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이해한 내용들입니다.

 

메시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구절은 다니엘 9:24-27절 입니다.

단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단 9: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단 9: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단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이 부분은 다니엘서에 나와 있는 묵시적 예언의 일부분입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바로 메시아를 뜻합니다. 메시아가 기름 부은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아마도 이 부분은 메시아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부분으로 이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역시 달리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메시아의 죽음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는 본문은 구약 전체를 탈탈탈 통털어도 위의 두 본문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다른 본문들은 모두 메시아를 강력한 군사적 지도자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사야 53장과 다니엘 9장에서 메시아의 고난에 대해 언급을 하고는 있지만 구약의 전체적인 문맥 안에서 메시아를 이해를 했을 때, 이 두 본문의 내용은 굉장히 쌩뚱 맞습니다. 다른 본문들에서 묘사를 하고 있는 메시아의 모습하고 너무 많이 다른 것이지요. 그러한 이유로 이성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구약의 내용만을 근거로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을 생각해 내기에는 어려운 점들이 많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메시아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본문들이 몇 있습니다.

행 2: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 2: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행 2: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행 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행 2: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행 2: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행 2: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행 2: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위의 본문은 누가가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부활을 인용하는 부분인데, 시편 16편을 근거로 내용을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 16편 중에서 10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부분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하고 있는 근거로 이야기를 합니다.

시편 16:10절에 나타나는 "내 영혼" 과 "주의 거룩한 자"는 시편의 문맥으로 보아서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지칭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다윗 자신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는 여기에 나타난 "내 영혼"과 "주의 거룩한 자"를 모두 예수님을 나타내는 단어로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는 말씀을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지요..

 

위의 예에서 보았듯이 구약 안에서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숨은 그림 찾기에 가깝습니다. 구약은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구약이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고 있다고 믿는 근거는 에수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예수님 스스로가 설명을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믿는 것 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와 부활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위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흔히 복음주의권 신학과 신앙은 외부로부터 성경 말씀과 관련해서 논리적으로 충분히 설명이 안 되는데 무엇인가를 일부러 끼워 맞추려 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 스스로가 당신의 죽음과 부활과 관련해서 끼워 맞추기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외부에서 보기에는 우리의 논리를 강제하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끼워 맞추기를 한다고 보여지는 바로 그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 기독교의 본질적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우리의 임의대로 끼워 맞춰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요.. 우리는 철저히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틀에 의거해서 말씀을 이해하고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서 신학, 선경공부는 진리를 찾아서 증명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선포된 진리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성을 진리를 규명하고 증명하기 위해서 사용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의해, 예수님에 의해 진리라고 선포되어진 것이 왜 진리인지를 이해하고 또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을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외부의 사람들이 보기에 끼워 맞추기라는 모습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진리는 어떻게 증명이 되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습니다. 구약은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충분하게 설명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구약이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었다고 말씀을 하셨고, 그러한 예수님의 주장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으로 인해서 증명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따라서 하나님에 의해서 선포된 진리가 증명되는 사건이고, 또 예수님의 신원이 회복되는 사건이었던 것이지요.

이 내용은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해당합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진리는 지금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성경의 진리가 진리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진리를 무엇으로 증명해 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역사하심으로 증명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그리고 성경이 제시하는 진리는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아울러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경을 우리의 이성적 판단으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의 내용은 우리가 이성적으로 판단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그러한 부분들을 이성적으로 접근을 하게 되면 결국 우리도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과 같은 길을 걸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성경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데에는 전통에 의지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전승이 되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내용을 기록(성경)으로 남기는 한편 자신들의 제자들에게 또 전승을 합니다. 이 것을 우리는 사도의 전통 또는 사도의 전승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 제자들의 제자는 지금 우리가 교부라고 부르는 사람들로 교부들은 그 내용을 다시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승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전승된 내용들이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에베소 공의회, 칼케돈 공의회등을 거쳐 중세시대를 넘어 종교개혁 시대까지 건너와 우리에게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로 이러한 사도들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전통에 임의로 무엇인가를 첨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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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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