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는 과연 반항의 시기일까?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 왔었는데.. 그냥 생각이 나서 한 번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미국에 있으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감사한 일은 주변의 간섭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문화는 간섭이 매우 많은 문화인 것 같다.. 문제는 종종 상대방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 시도한다는 것인 듯 하다... 일명 사랑, 또는 관심이라는 미명하에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는 옳은 시도는 분명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랑법 또한 적절한 사랑법이라 이야기 하기는 힘들 것 같다.

내가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는 얼마 전에 50주년을 맞이 했다... 처음 교회가 개척 될 때 1살이었던 아이가 벌써 50살이 된 것으로.. 교회에는 이미 2세대와 3세대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다.

2년 전 한국에 들어갔을 때 청년들의 수양회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곤 교회의 2세대, 3세대 아이들이 바로 이러한 상황에 몰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란적이 있었다. 우리 교회의 청년들은 대게가 다 신앙 2세대나 3세대였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당신 신앙을 강요하는 모습이 매우 일반적으로 퍼져 있었다.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고 자라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이 부모와 동일시 되지 않는 이상 이 아이들은 자신의 신앙을 발전시키고 그 신앙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누가 되었든 자기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신앙은 절대로 긴 시간 유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바르게 인지하고 아이들이 자기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끌어주고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많지 않음을 보고 많이 놀랐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청년부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이구동성으로 말 한다.. 아이들이 너무 나약하다고.. 당연하지 않겠는가.. 나약함을 떨치고 일어서려면 위험 부담을 안고 자신을 내 던져서 무엇인가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려면 위험부담 속에서도 자신을 지탱해줄 무언가가 필요한데.. 자기 신앙도 없고 자기 주관도 약한 아이들이 무엇을 디딤돌 삼아서 일어설 수 있겠는가??

일반적으로 사춘기를 반항의 시기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사춘기는 반항의 시기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부모의 영향력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는 때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패턴을 살펴보면 초등학생 까지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세계관 안에서 생활을 하는 것 같다. 부모가 이야기 한 세상이 세상의 다인줄 알고 있고, 자신의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힘이 센 사람인 것으로 보통은 이해를 하니 말이다. 따라서 부모가 이야기 하고 지시하는대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렇게 살면서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에 대한 기본적인 연습을 하게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쯤 들어가면 부모 외에도 세상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진다. 점점 부모가 이야기 했었던 세상이 세상의 다는 아니라는 것들을 알아가기 시작을 하면서  부모로부터 듣지 못한,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되는, 자신의 친구들로부터 듣게 되는, 다른 미디어 매체로부터 듣게 되는 다른 세상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나이다...
이러한 상태가 되면 자신의 부모의 이야기를 완전히 들을 수 없다. 부모가 이야기 한 것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부모가 가르쳐주고 부모가 제시하는 세계관에만 갇혀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이해 하기로는 이 것이 일반적으로 이야기 하는 사춘기 반항의 본질이다..

이 아이들을 어찌 해야 하겠는가?? 부모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고집하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살도록 강요하는 것은 분명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일단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부모들도 인간으로 신은 아니다.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해 부모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할 뿐 세상 전체를 다 알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특정한 자신의 세계관을 강요하게 되면 정작 그 아이가 나중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 해야 한다. 비록 자신과는 다르더라도 아이가 자신이 살아가고 자신이 일해야 하는 세상에 대해서 이해하고 그 세상에서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예능 프로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부모 세대에는 직업의 갯수가 약 300여개 정도였단다. 그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직업군은 의사, 변호사 등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직업군의 갯수는 무려 20,000 개가 넘는단다. 그리고 의사, 변호사등은 이제는 사향길에 들어섰다. 의사, 변호사를 해서는 예전처럼 못 벌어먹고 산단다. 지금은 의사, 변호사는 돈 벌이가 안 되는 직종이란다. 사회가 변하고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의 사회가 지금처럼 변했다면, 우리 아이들 세대의 사회가 어떻게 변해갈지는 우리들 중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 사회는 우리가 만들어 주어야 할 사회가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할 사회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정작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은 어떤 기술이 아니라 바른 가치관과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의지와 노력이어야 할 것 같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반항하는 아이들이 아니다. 이전에 들어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그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몰라서 당혹스러워 하는 아이들로 이해 하는 것이 더 바른 이해일 것 같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세계관의 강요가 아니라 어떤 세상을 만나게 되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바른 기독교적 가치관의 반석 위에서 세상과 바르게 소통하며 또 진취적으로 더 나은 세상의 모습을 그리면서 세상을 또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도 교회도 여러모로 아이들에게 더 큰 관심을 쏟을 필요는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7년을 지냈다. 미국에서 지내는 7년동안 나는 사춘기서부터 시작해서 어른들이 겪어야 할 과정들을 다 겪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누가 되었든 기독교인으로 세상을 진취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다 겪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없이는 소극적으로, 방어적으로 살 수 밖에 없다.. 세상을 깨고 나갈 힘이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Posted by yy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