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은 참 여러가지 다른 표현들이 가능합니다. 좀 아는척 해서 말하면 전인적인 인격의 형성 과정이라고 해도 될거 같고.. 부흥 강사 스타일로 이야기를 하자면 자기 자신이 깨지고 회개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해도 될거같고. 철학적인 입장에서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될거같고. 상담사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을거 같고요.

그 외에도 다른 표현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 모든것들을 하나로 요약하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이야기 할 수 있겠네요.. 하나님이라는 거울에 내 자신을 비춰서 하나님께서 애초에 나에게 의도하지 않았던 껍데기들을 하나씩 두개씩 드러내서 떼어버리는 작업이니까요. 이 작업이 수행되지 않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불 필요한 껍데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습이 프리즘을 통과하듯 굴절되어 보여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대할수가 없어지거든요. 따라서 하나님을 알아가려면 하나님을 온전히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모습을 굴절시키는 내 안의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오늘 집에 돌아와서 잠깐 쉬고 있었는데 잠결에 어린 영환이가 혼자서 웅크리고 앉아서 서럽게 울고있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놀라서 왜 우느냐고 물어보니까 너무 무섭대요.. 자기는 너무 무서운데 엄마도 아빠도 자기의 무서워하는 마음을 알아주지 않더래요.. 오히려 화를 내면서 자기가 무서워하는 곳으로 자기를 더 몰아내더래요.. 그래서 울고 있대요.. 이게 뭔일인가 싶어서 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어린 영환이가 계속 울부짖고 있더군요.. 무섭다고.. 나는 무섭다고..

요 일주일간 몸도 몸이지만 영적으로 다운되어서 괴로운 마음에 한 단계 더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계속 졸아가면서 기도했었는데.. 존거는 감기기운때문에 --; 혹시 마음가운데 아직도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해결되지 않은것이 있다면 보여주시고 치료하여 달라고 기도했었는데.. 오늘 제 안에 치유받고 해결받아야 할 문제를 보여주시네요.. ^^;
이 제는 이 문제로 싸워야 하겠죵?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저에게 보여주셨을때는 해결해 주시려는 의지가 있으시니까 보여주셨을테죵, 저로서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면 이 문제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함을 받아야 할 문제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겠네요.. ^^;

걍 오늘은 이 은혜를 다른 분들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도 찾아볼겸.. ^^;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기에 정상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나를 속이고 있는 문제였다는 사실을요. 보통 내적치유나 이런데 보면 어린 시절의 특별하게 좋지 못했던 기억들을 꺼내서 채유의 대상으로 삼는것을 흔하게 보실텐데요.. 물론 경험이 있으신 분들만 ^^; 다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판단의 근거나 기준이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흔히 백지에 비유를 하지요.. 무엇을 쓰든간에 그냥 다 받아들이는.. 따라서 어른들의 경우에는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판단의 근거에 비추어서 그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만 아이들의 경우는 주일학교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보통 그것을 그냥 있는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성향은 우리의 삶의 습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담임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쓰신 예화 중에서 "화냥녀" 사건을 예를 들어보면 자기를 너무도 이뻐하는 할아버지가 있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평소에는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해주고 귀여워해줬더랬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아이가 어느날엔가 호기심이 동해서 화로에 젓가락을 달궈서 머리에 고대를 했습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고대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냥 장난삼아서 한 것 뿐인데 평소에 자기를 너무나도 사랑해주던 할아버지는 그런 손녀의 장난을 그냥 "예쁘다" 이런 정도로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워낙 완고하신 분이셨는지 그날 회초리로 다리가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손녀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발언을 하십니다. "화냥년이나 하는 짓을 벌써부터 해서 어디에 써먹겠느냐"고요.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할아버지가 너무 심했다 라고 생각이 드실겁니다. 하지만 이 어린 소녀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이 소녀는 이 상황에서 아직 무엇이 잘됐다.. 잘못됐다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나이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무조건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그 이후부터는 무엇이 되었든간에 자신을 꾸미면 그것은 무조건 "화냥년들이나 하는 짓" 이라고하는 등식을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평생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화장도 안하고 옷도 칙칙하게 입고 평생을 그렇게 산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이 너는 왜 화장도 안하고 옷도 그렇게 입고 살고 있느냐고 물어올때 자기 자신은 그게 더 편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 자신을 평생 할아버지의 건강하지 못한 교육방침에 속박시키고 살아온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이 굳건히 믿고있는 자기의 가치관이라고 스스로에게 속으면서 말이지요. 그 가치관은 자기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어려서의 충격에 의해서 그렇게 믿게 된 것일 뿐이지요.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속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나의 자존감을 낮추고 열등감이 들게 만들며 세상에서 비굴해지게 만드는,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내면의 찌꺼기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찾아 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그 모든 것들이 치유를 받아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찾고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당당해지며 다른 모든 가족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랑해주고 다독여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누가 보기에도 아름답고 화목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변화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생깁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상담학 시간에 받았던 세 가지 질문을 이 곳에서 여러분들에게 한 번 해보고자 합니다.

1. 나는 누구인가?
2. 진정한 내가 되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들은 무엇인가?
3.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나는 누구인가? 제가 지금 드리는 이 질문은 지금까지 삶에서 여러가지 변수들로 인해서 비틀리고 꺾인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계획하시고 이 땅 가운데 만들기 원하셨던 진정한 내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하나님께 먼저 나가서 내가 누구냐고 물어봐야겠지요.. 그 다음 작업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모습으로 내가 미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질문이죵.. 이 단계에서 여러분들은 여러분 내면에 있는 수 많은 상처들과 분노들을 보시게 될 겁니다. 이것 역시 기도로 나아가셔서 하나님께 보여달라고 간청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진정한 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해 보셔야겠지요.. ^^; 정답은 두 번째 질문에서 보시게 되는 수 많은 상처들과 분노들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외에는 .. 별거 아닌거 같아도 이 작업이 여러분들의 본연의 모습을 찾고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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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y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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